또 다른 시작일 뿐
사십 대가 되고 나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인생에 있어서 실패는 없다는 거다.
실패를 했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이 하나 같이 훗날 다 도움이 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데 있어 밑거름이 된다는 거다.
결론은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는 거.
또 다른 시작점이라는 거.
독수리 병원은 로펌 퇴사 후 입사한 병원이었다.
사무보조 계약직으로 입사했기에 1년 6개월 근무하면 자동 퇴사다. 다니면서 일하는 근무 환경, 조건,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분들과도 잘 지내었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병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는데, 맛도 가격도 다 만족스러웠기에 다니는 동안 혹시 계약이 연장되거나 무기계약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었다.
하지만 같은 부서 내 검사실에 있던 계약직 직원들도 계약이 만료되며 하나 둘 나가기 시작하여
그런 기대는 빠르게 접게 되었다.
독수리 병원은 우리나라 최고 병원이라 인정받고 있는 S대 병원과 연계병원이다.
S대 병원 직원들이 독수리 병원으로 이동 신청하여오기도 하고, 독수리 병원에서 S대 병원으로 발령받아 이동하기도 했다.
함께 일하는 정규직 직원분께서 S대 병원 사무직
직원 채용이 있으니 원서를 써보는 건 어떠냐고 알려주셨다.
채용 공고 사이트에 들어가니 정말 공고가 떠있었다.
계약직이긴 했지만 병원 근무 경력도 있으니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원 자격을 보니, 요즘은 공기업, 공무원, 일부 대기업들은 블라인드 채용을 하기에 특별한 자격 조건은 없었다. 나이 제한도 없고, 대학이나 전공 등도 기재하지 않는다.
자기소개서와 직무 경력등만 기입하고 지원하면 되었다.
다만, 일반상식 필기시험이 있었다.
내 상식을 믿어보기로 했다. 웬 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
입사 지원서를 인터넷으로 접수했다. 자기소개서와 직무 경력서를 정성껏 써서 제출했다.
서류 통과! 오예!
"오~~ 아직 죽지 않았어." 생각하며 내심 기뻐했다.
하지만 아직 일반상식 필기시험과 면접이 남아 있었다.
면접도 1차 면접, 2차 임직원 면접이 있었다.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입사 시 보는 일반상식 책을 구입했다
독서실을 등록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스터디 카페가 나오기 전이었던 것 같다.
스터디 카페가 있었어도 아마 난 독서실을 찾아갔겠지만.
시간이 참 빠르구나. 그게 벌써 2016년 무렵의 일이다.
독수리 병원에 다니면서 필기시험 준비를 했다.
주말엔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평일엔 퇴근 후 틈틈이 공부했다.
드디어 필기시험날.
처음으로 S대 병원에 가봤다. 개인적으로 생각보다 시설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뭣이 중헌디?
필기 시험장에 도착하니 블라인드 채용이라 그런지 내 나이 또래, 혹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보였다. 물론 대다수가 대학을 막 졸업한 듯한 취준생들이었다.
오랜만에 입사를 위한 필기시험, 떨리긴 했지만
면접에 비하랴. 면접 볼 땐 우황청심원 마시고 왔는데 필기시험 볼 땐 그냥 봤다.
필기시험은 큰 강당 같은 곳에서 보았다. 공연장
의자에 작은 책상이 붙어 있는 구조였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동안 공부했던 책의
내용 중 간단히 메모했던 것들만 한 번씩 넘겨보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시험 치를 준비를 했다.
드디어 시험 시작.
생각보다 시험이 어렵단 생각은 안 들었다.
이런 시험에 비하면 요즘 수능은 진짜 어려운 거 맞는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확실히 엄청 잘 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또
엄청 망친 것 같지도 않고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시험지도, 정답지도 다 제출하고 나왔으니 정답도 알 수 없고, 사실 찾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정답이 어디 공개되는 것도 아니고, 맞춰볼 수도 없었다. 그냥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내심 기대를 하며 드디어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 날.
수험 번호 OOOO, 새벽 세시 칼리 합격!
와우, 합격이다.
" 아직 살아 있네!"를 외치며 면접 준비를 했다.
면접이란 말만 들어도 떨리는 약심장의 소유자.
일단 면접 정장부터 사러 갔다. 검정 재킷과 치마 세트, 검정 구두를 샀다.
바지를 입을까 하다가 그냥 치마로 결정.
복장은 준비됐으니 예상 면접 질문 예상지를 만들고, 나만의 대답들을 적어서 연습을 했다.
독수리 병원 계약직 면접 볼 때는 사실 그 분야는 잘 모르기도 했고, 단시간 근로라 아르바이트하는 수준으로 뽑는 건가 보다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말이다.
이번에는 필기시험까지 보고, 정규직 면접이라 그런지 더 떨렸다.
면접 보기 며칠 전부터는 잠자리에 누우면 면접 보는 장면이 떠오르고 예상 대답들을 중얼중얼 읊조리고, 긴장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드디어 면접 날.
면접자들이 많았는지, 면접 시간도 오전, 오후로 나누어 봤는데 나는 오후 시간에 보게 되었다.
면접 날이 12월 경.
오랜만에 신는 7cm 구두를 신고, 날씨가 꽤나 추워서 달달 떨며 면접 정장 위에 코트를 입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면접 대기하는 곳은 어느 강의실 같은 곳이었다.
책상들이 줄지어 있었고, 긴장되어 보이는 지원자들이 앉아있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가뜩이나 떨리는 상황에서 추위로 더 달달 떨고 있었고, 우황청심원의
효과는 나오기는 하는 것인지 심장이 쿵쿵 요동쳤다.
면접자들을 준비시키는 사원증을 맨 S대 병원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오며 가며, 지원자들을 호명하고 대기하라고 알려주었다.
족히 8명~10명이 들어갔다. 각자 수험번호에 맞춰 의자에 앉아 면접관들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숨 막히는 순간.
1분 동안 자기소개를 했다. 1분의 짧은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최대한 면접관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동안의 해왔던 일, 이 일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말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 질문 중, 병원 내에 환자들의 불만사항은 어떻게 해결해 줄 것인지, 상사의 지시가 불합리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자기소개와 3-4 가지의 질문에 대답하고 면접은 끝났다. 지원자가 많아서인지 면접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었다.
면접을 보며 독수리 병원 면접 볼 때도 느꼈지만
요즘 취준생들은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자신을 어필하는 모습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지원자는 자기소개를
내비게이션에서 나오는 멘트로 시작했던 지원자였다. 처음 들었을 땐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거 보면 각인 효과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 지원자는 합격했을까?
나는 그들에 비하면 정말 제대로 준비를 못했구나. 생각이 들며 자신감이 지하 100m 밑으로 급락하는
순간이었다.
MBTI 검사 결과 INFJ 인 나는 면접에 붙었을 경우와 떨어졌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며 면접 결과를 기다렸다.
1차 면접 합격자 발표날이 되었다.
면접 결과는.
-7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