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애가 그렇게 총명할 수가 없대요."
"수학이면 수학 국어면 국어 못하는 공부가 없어서 시골 동네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네요. 글쎄가~"
"어머 그래요? 얼마 전에 우리 골목에 이삿짐 차가 들어온다 싶었더니 그 집인가 봐요."
"맞아요. 그게 그렇게 똘똘한 아들을 시골에 썩힐 수가 없어서 서울로 상경한 거래잖아요."
"에휴~ 우리 애는 반에서 중간만 가도 좋겠는데."
귀갓길에 골목을 들어서자 구멍가게 앞 파라솔이 있는 테이블에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새로 온 전학생 이야기로 수다가 한창이었다. 벌써 온 동네 사람들에게 소문이 쫙 퍼져있었던 것이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우등생에 각종 상장까지 싹쓸이했던 전적이 있었던 지라 서울로 전학 와서도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던 것이다.
전학생은 마침 이사도 나랑 같은 골목으로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 근처 내가 다니고 있던 학원에도 등록하게 된다. 학교에서도 보고 학원에서도 만나니 그야말로 동네 친구가 된 것이다. 게다가 성격도 달리 모난 곳이 느껴지지 않고 성향도 나와 잘 맞는 편인 것 같아 우리는 쉽게 친해졌다.
"야 이번 토요일에 우리 오락실 갈래?"
"서울 오니까 오락실에 겁나게 재밌는 게임이 많아야? '킹 오브'인가 뭣인가 그거 재미지드라."
"정말 가도 돼? 부모님이 오락실 가는 거 싫어하신다며."
"우리 부모님 고향에 볼일 있어서 그날 집에 없어야. 내 동생도 데리고 갈 건디 너랑 해서 셋이 놀믄 재밌을 것 같애서."
"아 그래? 그럼 토요일 1시쯤에 해피 게임 랜드에서 만나면 되겠다."
"응 그려."
그렇게 토요일이 돌아왔고 민재의 동생을 포함한 셋은 약속 장소인 오락실에 모였다. 동생은 조금은 길쭉한 얼굴에 큰 눈 그리고 천진하게 활짝 웃는 얼굴 귀여웠던 남동생이었다.
셋은 두둑하게 준비해 온 동전으로 볼록해진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신나게 '더 킹 오브 파이터즈(현재까지도 시리즈가 나오고 있는 격투 게임)' 하고 있었다. 한 명이 앉아서 게임을 하면 둘은 서서 응원을 하며 깔깔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순간.
"Here Comes A New Challenger!!"
갑자기 게임이 멈추고 도전자가 나타났다는 문구가 화면에 떠올랐다. 맞은편에서 누가 동전을 넣고 결투를 신청했다는 뜻이다.
"아이! 하필! 야 어떡하냐. 나 자신 없는디."
마침 자기 차례로 게임을 하고 있었던 민재가 볼멘소리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결국 대결은 시작됐고 상대의 손놀림은 만만치 않았다. 능수능란한 기술과 심리전으로 적의 방어를 무너뜨리고 작은 빈틈도 놓치지 않고 강력한 콤보 공격을 실수 없이 때려 넣었다.
민재는 결국 너무나도 쉽게 KO 당하고 말았고 우리는 선뜻 재도전을 하지 못하고 잠시 서서 머뭇거렸다. 비록 게임에 불과하지만 초등학생에겐 모르는 누군가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맞대결을 한다는 사실이 아직은 꽤나 긴장되고 어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치 놀이터를 뺏긴 듯한... 조금은 분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같았다.
"음 이번엔 내가 한 번 해볼게."
나는 약간의 용기를 발휘해 재차 동전을 넣으며 다시 도전하기로 해본다. 한 판 졌다고 그대로 꼬리를 내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전도 충분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순식간에 2연패를 기록하며 역시나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상대의 약점을 하나 눈치챈다.
바로 하단 방어에 약하다는 것이었다. 아래로 낮게 깔리는 공격은 앉아서 방어하지 않으면 맞고 넘어지게 된다. 조금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까지의 패배를 만회하고 싶다는 생각에 집요하게 상대의 약점을 공격했다. 그리고 접전 끝에 무 5연승이라는 놀라운 전적을 내고 쾌재를 부르고 있을 무렵이었다.
"쾅!!"
맞은편에서 주먹으로 게임기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교복 차림의 남자 중학생 두 명이 씩씩 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야! 씨발! 너네 죽을래?"
"계속 그딴 식으로 하면 죽여버린다 진짜.."
쫄아버린 우리는 더 이상 웃으며 게임을 할 수 없었다. 중학생들은 다시 동전을 넣고 도전을 해왔지만 나는 게임을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져주고 친구들에게 그만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조용히 오락실을 빠져나가려던 그때.
"야! 너네 어디 가!"
"이게 어딜 이겨 먹고 도망가려고."
두 중학생은 하던 게임을 멈추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야 너네 돈 얼마 있냐?"
없다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오락실을 위해 준비한 동전으로 다들 주머니가 볼록했고 셋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두 중학생은 그런 우리에게 어깨동무를 걸어왔다.
"야 친한 척하면서 조용히 따라와."
그렇게 우리는 오락실 뒤편에 있는 주차장으로 끌려가서 무릎을 꿇은 채 모든 동전을 다 털렸다.
"너네 우리가 봐준 줄 알아. 우리 가고 나면 그 뒤로 100까지 세고 일어서. 알았어?"
그렇게 우리 셋은 무릎을 꿇은 채 허탈하게 남겨졌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