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 Chagall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Les amoureux aux bouquets rouges, Red bouquet and lovers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5
92 x 73 ㎝
2021년 5월 26일, 이건희 컬렉션에 샤갈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발표가 난 직 후, 위 작품과 비슷한 시기인 1973년에 샤갈이 같은 지역인 프랑스 생 폴 드 방스 Saint-Paul-de-Vence 에서 그린 작품 ‘생 폴 드 방스의 정원 Les Jardins de Saint Paul’ 이 한국 경매에서 42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Marc Chagall 마르크 샤갈 1887 - 1985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은, 그의 작품 속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컬러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색을 너무나 아름답게 쓰는 그이기에, 그가 좋아하는 최고의 색은 무엇일까? 궁금해하던 우리들에게 그는 말한다.
In our life there is a single color,
as on an artist palette which provides the meaning of life and art.
It is the color of love.
우리의 인생에는,
삶과 예술의 의미를 제공하는 아티스트의 팔레트와 같은,
하나의 색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색입니다.
- Marc Chagall -
아, 사랑의 색!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색은 사랑의 색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유였던 것이다.
1887년, 그 당시 러시아 제국이었고 지금은 독립한 벨라루스 Belarus 공화국의 도시 비테브스크 Vitebsk 에서 유대인 Jewish 가족의 9남매 맏이로 태어난다. 아, 9남매의 맏아들, 듣기만 해도 무거운 삶의 무게를 느끼는 건 내가 한국인이라 더 그런 걸까?
아무튼, 샤갈의 고향인 비테브스크는 그의 작품에서 ‘고향’ 이라는 이미지로 참 많이 나타난다. 보통 그의 작품에서 작은 집들로 이루어진 마을의 모습 대부분은 그의 어릴 적 고향인 비테브스크를 나타낸다. 우리가 시로 많이 들었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 또한 이 비테브스크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샤갈의 작품명으로 ‘눈 내리는 마을’은 없다.
그의 여인 벨라 Bella,
샤갈은 두 번의 결혼을 하는데, 1905년 그림 공부를 위해 머물렀던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Saint Petersburg 에서 그의 첫 여인인 벨라 로젠펠트 Bella Rosenfeld 를 만나 1915년에 결혼한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신부, 단발머리 모양의 여인 모습은 대부분 그의 첫 연인인 벨라이다. 샤갈이 너무나 사랑한 벨라는 슬프게도 1944년 박테리아 감염으로 49세의 나이에 샤갈보다 먼저 생을 마감한다.
그 후, 1952년 그의 두 번째 부인인 바바 Valentina (Vava) Brodsky 와 결혼 후, 한 번의 이혼과 재결합을 걸쳐 1985년 생 폴 드 방스의 생활까지 그녀와 함께 한다.
벨라와 결혼식을 올리기 열흘 전, 샤갈의 생일인 7월 7일에 그린 작품으로, 벨라가 무척이나 좋아하면서 작품명인 ‘생일 Birthday’ 를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펠탑이 있는 파리에서 약혼한 두 연인을 태우고 솜털 같은 하늘을 날아가는 수탉, 축하 연주해 주는 염소, 받은 부케를 들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친구 등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의 모습이다.
야수주의 Fauvism 와 입체주의 Cubism 사이의 선 타기,
1910년, 그의 나이 23세일 때 그 당시 예술의 가장 핫한 트렌디한 곳인 프랑스 파리 Paris 로 가서 그림을 그린다. 이곳에서 큐비즘(입체주의)과 야수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그가 놀라운 건, 그 당시 주류였던 두 흐름 사이에서 그 흐름을 타면서 또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사이에서 그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감정의 색’이라는 야수주의에서 샤갈 컬러를 만들어내고, ‘형태의 본질을 보기 위한 다면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큐비즘(입체주의)에서 입체적 트렌드를 끄집어낸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그의 대표작품 중에 하나인 ‘나와 마을 I and the Village’ 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컬러의 조합을 통해 야수주의를 보여줄 뿐 만 아니라, 작품 안에서 보이는 구, 삼각뿔, 원통형 등의 도형적 성격이 큐비즘(입체주의)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 아티스트 Jewish Artist,
유대인 가족이기도 하고, 그 또한 유대인이었기에 그의 작품 속에서 만나는 십자가, 교회, 염소, 바이올린, 춤추는 사람들 등은 유대교 또는 구약성경의 종교적 의미들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러시안 화가 vs. 프랑스 화가?
1887년 당시 러시아 제국 땅이었던 비테브스크에서 러시안 이름 모이쉐 샤갈 Moishe Shagal 로 태어나, 그림 공부를 위해 1906년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지낸다. 1910년 프랑스 파리로 넘어오면서, 그의 이름도 프렌치로 발음하기 쉽도록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로 바꾼다. 그 후에도, 1차 세계대전 시기인 1914 - 1922 에는 러시아로, 1923 - 1941년에는 다시 파리로 와 프랑스 시민권을 얻게 되고, 2차 세계대전 즈음인 1941 - 1948년에는 미국 뉴욕 New York 으로, 1948년부터 그의 생의 마지막인 1985년에는 남프랑스 니스 Nice 에서 약 7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생 폴 드 방스 Saint-Paul-de-Vence 에서 지낸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그의 이동 속에, 러시안 국적과 프랑스 국적을 가지게 되었기에, 샤갈을 러시안 화가로 보기도 하고 프랑스 화가로 보기도 하는 이유이다.
Red bouquet and lovers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5년, 그의 나이 88세 프랑스의 남쪽 니스 Nice 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생 폴 드 방스 Saint-Paul-de-Vence 에서 지낼 때 그린 작품이다. 생 폴 드 방스의 좋은 날씨 때문에 만개한 꽃들을 많이 접해서일까, 아니면 그의 노년의 여유로움 속에서 꽃과 나무가 좋아져셔였을까, 샤갈은 이 시기에 꽃다발 그림을 많이 그린다.
전체적으로 파란 바탕에 있는 꽃다발은 더 생기 있게 보인다. 또한 꽃다발이 주는 설레임이 물씬 풍긴다. 온 세상을 파랗게, 생기 있게 만들어주는 꽃다발의 놀라운 힘을 보는 듯하다. 초기의 명확한 표현력으로 주던 초현실적인 느낌보다는, 이젠 그 과정을 거쳐 추상적인 느낌으로 우리에게 황홀감을 준다.
정중앙에 꽃다발의 꽃병이 놓여있고, 그 주위에는 아마도 그 꽃다발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려놓은 듯하다. 꽃다발을 주고 받을 사랑스런 연인들, 그의 작품에서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라 반갑다. 이게 샤갈이지,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바로 위에는 그의 고향 비테브스크 마을의 평온, 축하의 자리에서 함께 하는 와인과 과일바구니, 연하게 처리하여 아련함을 함께 준다.
화병에 꽂혀 있는 빨간색 꽃다발이 만발하다.
언뜻 보기에 빨간 장미꽃으로 보이는데, 가까이 보니 색 덩어리이다. 이러한 색 덩어리가 꽃으로 보이는 게 신기하다. 터치 몇 번으로 툭툭, 찍어내듯이 그려놓은 꽃이 너무 좋다. 한평생 그림으로 달려온 노화가의 노련미가 물씬 풍기는 듯하다.
여러 번의 붓질로 그려낸 꽃다발의 나뭇잎 표현도 너무 좋다. 녹색만 있는 게 아니구나, 그 안에 파란색, 그린색, 짙은 그린, 옅은 그린, 짙은 파랑, 옅은 파랑, 자유롭게 범벅이 되어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너무나 오랜만에,
나도 꽃다발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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