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의 언약
노아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물이 완전히 마른 대지를 밟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방주에서 나온 가족과 동물들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홍수에서 살아남은 그들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구름이 점점 흩어지며 그 사이로 찬란한 빛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노아의 눈앞에 찬란한 무지개가 펼쳐졌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일곱 가지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무지개는 하느님의 언약이 눈에 보이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운다."
노아의 머릿속에 하느님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게 하리라.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다."
노아는 땅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세상을 덮었던 심판이 끝났으며, 이제 그들은 다시 살아가야 했다. 그는 가족들을 돌아보며 다짐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리라."
---
세월이 흘러, 사람들은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과 죄악 또한 함께 자랐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약을 잊고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도시는 카이사리아 필리피였다. 이곳은 로마의 법과 헬레니즘 사상이 지배하는 곳이었으며, 많은 이방 신들이 섬겨지는 도시였다. 사람들은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겼고, 황제의 권위가 곧 신의 권위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도시 한쪽에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한 인물이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예수였다.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며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저마다 대답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리고 다시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순간 머뭇거렸다. 그때, 베드로가 한 발짝 나서며 말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입을 여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베드로는 놀라며 반박했다.
"안 됩니다, 주님!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제자들은 숙연해졌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고난과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분의 눈빛은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날 밤, 베드로는 혼자 남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노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느님께서는 홍수를 통해 인간의 죄를 씻으셨고, 무지개를 통해 언약을 맺으셨다. 하지만 인간은 다시 죄를 지었고, 이제는 또 다른 심판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써 새로운 계약이 세워질 것이었다.
베드로는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주님, 제가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비록 제가 연약할지라도…."
---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그곳에서 그분은 예언대로 많은 고난을 겪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하늘은 어두워졌고, 땅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하지만 그 순간, 예수님의 마지막 외침이 들려왔다.
"다 이루었다!"
그분은 숨을 거두셨지만,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희망이 싹텄다.
그리고 사흘 후, 무덤은 비어 있었다.
하느님의 새로운 언약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너희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이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