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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Sep 23. 2024

우리는 함께 걷는 인연인지도 모르지

새로 딛고 일어서자

  마알간 하늘가를 따라온

 까마귀들

  검은 날개 감추며 소리 없이 날고 있다

  내 시선은 둘 데 없어

  가을바람 속으로 붉음이 스며드는데

  캐캐한 담뱃재를 비벼대는

  늙은이의 손길에서 매캐함이 묻어나고

  까마귀는 목이 아프다 고개를 쳐든다

  어디로 날아가야 할까

 붉은 꽃씨 앞서 왔는데


 어쩌면 우리는

 굽은 고갯길을 함께 건너는 사이인가 봐

 이지러진 꽃대 사이를

 나비 한 마리 콜록거리며 숨을 내뱉는다

 까마귀는 나를 따라오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그만의 언어로

 멈칫 괴성을 질러대고는

 머리 위를 힘겹게 회오리치며 돈다

 돌다 돌다 또 돌다

 제자리로 돌아와 긴 나무 끝에 내려앉는다


 나는 꽃무릇길을 걷고 있다

 날갯짓하는 나비는 꽃대에 내려앉고

 까마귀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의 길을 알려준 적 없으니


 우리는 모두

 이른 아침 피어나고 있는 하나의 꽃씨다

 저는 저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함께 걸어가는 인연인지도 모르지

 아무렴 어때

 각자의 길에서 걷다

 어느 모퉁이 꽃길에서 또 만날지도


 포기하지 않고 날고 있다

 우리 삶도 그러하듯

 날다 보면 각자가 닿고 싶은 곳에

 안착할 수 있겠지

 부지런히 움직이는 아침길에

 꽃씨 하나 뿌려진다면

 우리는 또 딛고 일어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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