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온종일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호박과 상추와
고추와 오이와 가지들
세상에 그 많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
그렇게 다시 밭으로 와
뙤약볕 아래 치마를 걷고
누런 장화를 껴 신는다
해넘이의 햇살은 아직 따갑다
메말라가는 토양과
발갛게 익어가는 열매들
곧게 뻗은 호박넝쿨은
고양이가 와서 앉았다 가도 되겠다
밤마다 내리는 어스름을 맞고
새벽이면 솟구치는 태양을 맞느라
분주히도 애썼을 양식들
네가 웃으며 반겨주니
어찌 설레지 않겠니
담을 타고 넘어가는 흔한 풍경
그 많은 손길들을 견디느라
다시 밭으로 와
한 그루 나무로 서서
오롯이 하늘을 받치며 이웃하여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밤을 맞는다
그래, 내가
나를 기다려주는 그곳으로 가
너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리
메마른 땅에 흠뻑 물을 적시고
마르지 않을 사랑을 주리
그래서 오늘도
너를 반기며 밭으로 간다
태어났으면 사라질 것들이지만
그것마저 고마워하는 미물 앞에
우리는 늘 사랑이란 말을 붙잡고 산다
엉거주춤 기대고 있는 사이여도
밀어내지도 끌어안지도 않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녹이고 있는 것처럼
ㅡㅡㅡ일용할 양식을 주신 고마운 땅에게. 어린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