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11월의 마지막 날 텃밭에 물 주러 갔는데 대문이 젖혀져 있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인다. 누군가 다녀갔구나 했다. 수도가 얼지 않게 친구가 옷을 입혀 놓고 갔다. 그러고는 대문을 닫는다는 걸 잊었나 보다. 물을 주고 갔구나, 땅이 촉촉하다, 했더니 정신머리 없는 사람아, 어제 비 왔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화기 속에서 터져 나온다. 나도 빵 터지며 헛웃음을 날렸다. 한 번쯤 정신머리를 빼놓고 다녀도 그들은 고마운 친구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텃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그냥 나오려니 손이 심심해서 누렇게 변해가는 시금치를 뜯듯이 뽑았다. 아직 여린 잎인데 그대로 썩히기 아까웠다. 한 끼 식사량만 챙겨 집에 돌아와 다듬으면서 어느 것 하나 함부로 버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지간하게 먹지 못할 것이 아니면 버리지 않았다. 내 수고로움을 알기에, 친구의 수고로움이 얹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