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다
물 준 땅이 얼 수도 있구나
겨울비가 온 뒤의 땅은
얼 수도 있다는 걸
축 늘어진 배추를 보며 깨달았다
아직 알이 덜 찬 배추를
묶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는
수도가 얼지 않게 옷을 입혀 놓고 갔다
대문은 확 열어젖혀 놓은 채
누군가 지나가다 밟았을지도 모르는
텃밭의 고요를
시금치는 누런 잎으로 대신하고
잔파는 아직도 싱싱하게 솟고 있다
누렇게 변해가는 시금치를 뽑으면서
다치고 상하는 틈에도
굵은 손가락이 어쩌지 못한다
배추는 더 있다 뽑아야 한다
옆집 어르신은 리어카를 끌며
잘 키웠다 칭찬하시는데
나는 어쩐지 배추가 맛있게 보인다
지금 하나 뽑아다
배추전 만들어 먹고 싶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운 배추는
내 손으로 그걸 샀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누런 잎 하나도 버리기 아깝다
비록 먹지 못하는 부분일지라도
버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마음이 쓰인다는 거겠지
시금치 누런 잎을 버릴 때도 그랬다
줄기 하나에 붙은 누런 잎만 잘라 뗐다
줄기의 반은 버리고 반은 먹었다
키워 보니 그렇게 된다
내 수고가 보여서
내 노력을 결코 헛되이 버릴 수 없음을 안다
ㅡㅡ11월의 마지막 날 텃밭에 물 주러 갔는데 대문이 젖혀져 있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인다. 누군가 다녀갔구나 했다. 수도가 얼지 않게 친구가 옷을 입혀 놓고 갔다. 그러고는 대문을 닫는다는 걸 잊었나 보다. 물을 주고 갔구나, 땅이 촉촉하다, 했더니 정신머리 없는 사람아, 어제 비 왔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화기 속에서 터져 나온다. 나도 빵 터지며 헛웃음을 날렸다. 한 번쯤 정신머리를 빼놓고 다녀도 그들은 고마운 친구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텃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그냥 나오려니 손이 심심해서 누렇게 변해가는 시금치를 뜯듯이 뽑았다. 아직 여린 잎인데 그대로 썩히기 아까웠다. 한 끼 식사량만 챙겨 집에 돌아와 다듬으면서 어느 것 하나 함부로 버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어지간하게 먹지 못할 것이 아니면 버리지 않았다. 내 수고로움을 알기에, 친구의 수고로움이 얹혔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