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키운 배추로 김장을 했다
배추, 너도 아름답다
밭에서 키운 배추를 뽑았다
김장을 하려고 칼을 빼들었다
싹둑 단번에 잘리니 아프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배추는 이겨냈을까
비도 맞고 이슬도 맞고
고양이 발걸음에 지쳐 똥도 쌌을 텐데
가을바람맞으며 한줄기 한줄기
안으로 안으로 속을 채웠을 텐데
그래도 다 채우지 못한
노란 속을 들여다보면 그도 노랗다
배추의 몸을 가르니
한겨울 추운 바람 속을 함께 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너그러이 넓죽 칼끝에서 웃는다
어찌 그것이 아름답지 않을까
오늘을 기다리기 위해
온 날을 의미 있게 지났다
어쩌자고 저도 내게로 와서
젊음을 불살랐던 온 속을 내보일까
오히려 울지 않았다면
이상했던 세월이었을까
노랗게 물든 속을 보며
노랗게 익어가는 나의 세월을 덮는다
ㅡㅡㅡ올가을 심어 가꾼 배추를 거두어들였다. 비록 알이 꽉 찬 것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첫 농사 잘 지었다 싶다. 추운 바람도 이겨내고 때론 주인의 무관심도 이겨내고 무심히 비추이는 따스한 태양을 홀로 받아내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름답고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배추 키우는 걸 잘 알지 못했던 주인의 무지를 애써 눈감아 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럼에도 내게로 와 준 알 작은 배추가 의미 있다. 내게도 큰 의미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