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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Dec 20. 2023

살고 싶어서 걷는다

나는 중년에 다시 걷기로 했다


2년에 한 번 국가에서 책임져주는 건강검진도 복에 겨워 빼먹을 때가 있다. 나름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맘이 약간 있어서. 난 괜찮아, 별 문제없어.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잘 자니 특별히 문제없음이라고 스스로 결론 내리고 살고 있다. 뭔가 불편을 느낀 것은 며칠 전. 2년 전에 실시한 내과 검진에서 콜레스테롤이 높으니 내원하라는 병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이 내심 불안했다.


위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을 검사한  그날 이후 목에 침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검사하는 과정에 의산가 간호산가 누군가가 목을 심하게 후비고 파놓았던 것이다. 어찌 된 일이냐   병원에 전화했더니 환자가 예민해서 그렇단 변명 섞인 말만 들려온다.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침도 넘기지 못할 만큼 아팠을까.  내 생각엔 둘 중 누군가는 초보임에 틀림없다. 다시는  병원 내과 안 간다 다짐했다.



"조금 더 젊은 나이면 굳이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데 지금의 나이에는 드셔야 합니다. 운동을  해도 수치가 확연히 떨어지진 않습니다."


결국 병원을 찾아 피검사를 한 결과가 나왔다. 불안이 확신으로 숫자가 못을 박아놓았다. 그래, 이것만으로도 다행이야.  

약 먹으란 소리를 듣고도 운동을 하거나 저녁 늦게 야식을 줄이면 충분히 수치를 낮추게 될 줄 알았다. 의사가 아무리 먹어라 해도 버텨 볼 요량이었다. 의사는 곁눈질로 못마땅하다는 듯 꼬나본다. 그런 내게  년 단위로 먹어야 한다며 말꼬리를 뺀다.


나에게 약이란 건 여태껏 키우지 않았다.  감기에 걸렸을 때 먹는 약 이외엔 없었다.  또래의 친구들이나 동년배들은 거의 다 먹고 있다지만 나는 그들과 달라야 했다. 결코 다르길 원했다. 쓸데없는 자부심 아닌 고집이라도 부리고 싶었던 것이다.


모임 자리에선 건강 얘기가 단골이 됐다.  부산하게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 곁에서 조용히 때론 거만하게 앉았다.  나만 아직 괜찮구나 자만 섞인 모습으로.  그러나 그런 내게 오히려 아무도 관심이 없다. 다수의 공통어는 무슨 약을 누가 많이 먹는가가 될 만큼 온통 건강에 관한 얘기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지혜로워진다는 것이다.  남의 말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나의 무모한 고집도 꺾일 줄 알아야 한다.  약 하나에 자존심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고개 흔든다 해서 나에게 좋을 건 없다 싶다. 약을 먹자. 그래. 나의 건강이 나쁘다는 걸 인정하자.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  그러자 마음이 오히려 편했다.  안 먹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달을 먹고 검사할 땐 운동해서  좋아졌는 걸 보여주자.  이를 악다문다.


큰 녀석이 제가 다니는 헬스장을 적극 추천한다.  엄마 상태에 맞춰 트레이너가 플랜을 짜 주면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그런 게 싫다.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썩 유쾌하지 않다.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내 몸 움직이는 대로 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하면 엄마, 살 절대 못 빼요,  단언하는 큰 녀석이 얄밉다.  




큰 녀석은 지금 헬스에 미쳐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빼먹지 않고 간다.  오늘 하루 쉬면 어떠니 해도 안 가면 오히려 이상하단다.  그 마음 알지. 트레이너를 해도 될 만큼 자세도 바르고 몸집도 좋다.  근육이 없어 너덜너덜한 살을 달고 다닐 때보다 한결 멋지다.  탄탄한 근육을 보면 부럽기도 한데 몸 따로 마음 따로 똑 같이 움직이기가 쉽진 않다. 나도 예전엔 비가 와도 우산을 들고 걸었으니 주위에서 미쳤다고 해도 내가 좋아서 걸었던 일이다.  지금은 안 된다.  따뜻해지면 하자, 비 그치면 하자, 온갖 핑계를 대다 또 일 년을 보냈다.  



어느 작가는 칠십에 걷기로 했단다.  한창  늦었는데 싶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부터라도 한다면 걷지 않는 청춘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싶다.


원하는 건 청춘으로 돌아가는  삶이 아니라 지금의 이 나이에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고 충분히 우아할 수 있게 내 몸의 나이에 맞는 걷기 운동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마음이 젊어지기 위해, 건강하게 살기 위해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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