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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왕자 Feb 28. 2024

눈 안의 풍경은 그대로 삶이 되고

봉하마을을 걷다


쇠솥이 반지르르 빛난다.  주인장의 정갈함이 돋보인다.  마르고 닳도록 닦아 내도 끼인 세월의 더께는 앉았을 터, 누가 저토록 오래된 슬픔을 걷어냈을까.  

정주간에 앉아 고난의 세월을 작대기로 읊었을 이들.

맨발로 들어가도 될 만큼 생채기 하나 없이 맑다.  


액자로 만들어진 바깥풍경은 더없이 푸르고 이내 나는 거기서 한 발 물러나 객이 된다.



즐거웠던 유년이었다.  너른 마당에 텃밭을 끼고 감이 주렁주렁 달린,  담장 너머로 팔을 벌리고 있는 떨감나무도 있었고  해마다 고추를 땄고 옥수수를 땄고 오이를 땄다.  그냥 씹어 먹었다.  옷에 입술에 보랏빛 가지물을 묻혔다.   달고 맛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세월을 엎고 포개고 덧씌운 초가집 앞마당은 신성한 그것처럼 오히려 소담하다.  차마 울지 못한 젊음도 포개졌으리라.


노오란 속살을 드러내며 지붕 위에 둘러앉아 누구를 기다릴까 사뭇 진지하다.  간간이 들리는 아이들 웃음소리에 활짝 피었다 오므리기를 여러 번,  이미 과거의 영예는 사라졌다.  호박꽃도 꽃이다,  나처럼 맛있어 봤니!!!  


제대로 누군가 올려 보지 않으니 모를 수밖에.  바보야,  여기 있다고 소리쳐 봐야지,  내가 여기 앉았다고 손짓해 봐야지.  아무 말없이 그대로 웃어만 줘도 꽤 괜찮은 몸짓이 된다.


어떤 마음은 잊고 살아야 한다.  켜켜이 묻어둔 잔가지들을 들추어 부러 생색내지 않고 담담히 때로는 소리 없이 강한 울림으로 그렇게 묻어두어야 한다.  밟고  밟히고 짓이겨진 세월의 무게만큼 눌어붙어 살이 되었던들 어찌 아프다 말할 수 있을까.  


물고기는 바다로 가야 하고 산짐승은 산으로 가야 하고 짓밟히고 상처 난 인생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묵은 상처를 씻겨내듯  묵은똥을 쏟아낸다.  집을 찾지 못해 안타까운 사람들의 원성과 앞날이 보이지 않아 꾸물거렸던 서툰 날들이 쪼그라진 다리 사이로 풍덩 얼씨구나 흩어진다.  그러면 안심이 될까.  묵혔던 아픔들이 똥 떨어지듯 떨어지면 비었던 가슴에 새살이 찰까.  


쥐고 있는 게 전부는 아니라고, 놓아둔 것들이 다시 모여 거름이 된다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핥아내고 훑어내어 다시 유년의 그 시절로 돌아가 푸른 바다처럼 누비기를.  



#노무현생가#봉하마을#김해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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