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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fire Jun 06. 2024

아파야 설움을 안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동시에 겪게 된 시기가 내게 있었다. 이를 잘 견디지 못했던 나는 공황,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 불면과 같은 증상들에 시달렸다.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면서 새벽을 맞이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듯한 공황 발작이 찾아올 때면, 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러한 증상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긴 고민 끝에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의 입장이 아닌, 반대의 입장에서 정신과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은 생각보다 큰 부담이 되었다. 대부분 정신과 병원들은 진료 시간이 길고,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예약된 진료 시간 전후로 항상 여유 시간을 넉넉히 두어야만 했다. 정신과 진료 일정이 내 하루 일과에 끼어들 때면, 그날의 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진료를 위해 많은 번거로움과 수고가 필요한 것이었다.


하루는 병원 예약 날짜가 다가오자, 병원에 가는 것이 너무 귀찮기도 하고 진료를 보러 다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바쁜 직장 생활 중에,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약속도 잡지 못하고 매주 진료를 보는 것이 내가 하자 있는 사람이라고 자꾸만 되새겨주는 것 같았다. 때로는 진료가 끝난 후,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마음을 털어놓았다는 후련함보다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어느 날은 생각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히려 예정된 진료 시간보다 내 진료가 30분가량 늦춰져 1시간 가까이 대기하게 된 날이 있었다. 병원 로비에서 유튜브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가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의사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힘들게 진료에 오고 있는지 알까? 내 시간도 소중한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하며 투덜거렸다. 가끔은 진료를 보아주시는 의사 선생님께서 별다른 말 없이 “음, 알겠어요. 약을 늘려봐요”라며 갑자기 진료를 마치는 날에는 내심 속으로 조금 서운해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나를 스쳐갔다. “아…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환자분들이 내 외래로 찾아오실 때 얼마나 큰 수고로움을 겪고 오시는지 전혀 몰랐구나.” 그리고 혹시라도 이렇게 수고스럽게 본 진료가 성의 없게 느껴진다면, 환자 입장에서는 꽤나 서러움을 느낄 것 같았다.


비로소 내가 환자가 되어보고 나니, 환자들이 얼마나 큰 인내와 노력을 기울여 병원을 찾아오는지 깨닫게 되었다. 골절처럼 눈에 명확하게 보이지도 않고, 아직은 병을 가진 사람이 비난받기도 하는 이런 마음의 병을 진료 보기 위해 병원을 찾아온다는 것은 정말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날 저녁, 내 머릿속에는 매주 꼬박꼬박 시간을 지키며 외래를 찾아주는 환자분들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그분들의 시간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좀 더 나은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옛 속담인 “병들어야 설움을 안다”는 말이 떠올랐다. 역시 옛말에는 틀린 게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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