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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콩 Nov 10. 2024

그냥 소설

4화. 시간의 흐름

   

며칠이 지났다. 이제는 혼자가 어느 정도 적응 되는 것 같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의무적으로 누군가에게 내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퇴근 후 잠들기 전의 조용한 적막은 이별을 실감하게 한다. 그래. 하루를 누군가와 6년 동안 공유했는데 금방 괜찮아지는 것도 이상하다. 이렇게 남는 시간이 아까운데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해볼까?

   

-잘 지내?     


태준이다. 6년을 만나고 얼마 전 나에게 이별을 선물한 남자. 그와는 안 어울리는 이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전 남자 친구 바이브의 문자는 뭘까. 역시 사람 사는 것 모두 비슷하다. 바로 답장을 할까 하다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이제 와서 서로 안부를 물어보는 것도 웃기다. 어련히 잘 살고 있겠지 그런 게 궁금한가? 그런 생각을 하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매번 똑같이 울리는 알람 소리. 습관처럼 확인한 핸드폰 액정에 어제 확인한 태준의 문자와 확인하지 못한 기정의 문자가 와있다. 태준과 기정이 서로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이였나. 두 사람이 찰떡궁합이네. 두 사람이 만났다면 참 잘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이 잠깐 스친다.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지 않아도 딱딱 알아맞혀서 답답하고 꼬인 것 없이 사랑했겠지. 한참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발휘하다 출근 시간의 압박으로 태준과 기정의 모습이 사라졌다.   

   


언제나 기대되는 돌아온 퇴근 시간. 오늘은 퇴근 후에 예쁜 카페에 가서 책도 보고 나를 위한 시간을 좀 보내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요즘 근처에 좋은 카페가 있다던데 거기가 어디더라. 가방 깊은 곳에 들어가 버린 핸드폰을 손을 넣어 휘휘 찾다 결국 가방을 얼굴 앞으로 들이밀었다. 역시 가방 저 아래 끼여있다. 핸드폰을 들고 카페를 찾으려는 순간 기정에게 전화가 온다. 그의 전화번호를 보다 빨간 버튼을 누른다. 아직은 아니다. 나는 오늘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웠다고. 너는 내 계획에 없었다.      


그렇게 핸드폰을 보며 걷는데 누군가 내 앞에 섰다. 신발을 보니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겠다. 시선을 핸드폰에 두고 모르는 척 그를 지나쳤다. 몇 걸을 못 가 손목이 잡혔다.     


“나 언제까지 피할 거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놈은 가끔 강아지 같다. 내 죄책감을 더 해주는 저 눈과 좋다고 살랑거리는 꼬리, 나와는 다른 텐션의 에너지. 내가 너를 매일 가르치고 산책시켜야겠니. 나는 네 주인이 아니란다.      


“이왕이면 네가 나를 질려할 만큼 끝까지.”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잘못한 거 없어.”

“근데 왜 피해?”

“그냥.”

“그냥? 사람을 피해?”

“응.”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바보야. 나 때문이잖아. 내가 너무 미안해서.      


“피하지 마.”

“싫어.”

“싫어도 피하지 마.”

“야. 너 그거 알아?”

“뭐.”

“내가 누나야.”     


내 말에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곧 이마가 쭈글 해진다,      


“근데?”

“그렇다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생각하는 그의 표정을 관찰하는 건 꽤나 재미있다. 결국 답을 찾지 못했나 보다. 얼굴이 구겨져서 펴질 생각을 안 하네.      


“나는 그렇게 말하면 몰라. 네가 누나인데 어쩌라는 거야.”

“그냥 그렇다고. 내 소중한 퇴근시간을 방해하지 말아 줄래?”

“어디 가는데?”

“네가 알아서 뭐 하게?”

“그냥. 궁금하니까.”

“나는 혼자 예쁜 카페를 가서 조용히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웠어. 그러니 방해하지 말아 줄래?”   

  

그 말을 들은 기정은 천천히 손목을 놓았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응. 오늘 계획은 혼자 가는 거였어. 내 계획에 오늘 너는 없어.”

“그럼 언제 네 계획에 내가 있는데?”

“그건 모르지. 나 바빠. 안녕.”     


그렇게 시선을 핸드폰에 두고 그를 지나쳐 걸었다.     


“연락 피하지 마.”     


그의 외침이 뒤통수에 꽂힌다. 그리고 나는 금방 그 카페가 어딘지 찾았다.     







미치겠네. 진짜 강아지 같다. 따지면 자기 멋대로 하고 눈치를 살살보는 성격의 아주 큰 강아지. 저 놈이 왜 지금 이 시간에 내 사무실에 웃는 얼굴을 하고 서 있는지. 정말 잊고 살았던 두통이 다시 도지려 한다.     


“안녕하세요. 배달 왔습니다.”     


그의 등장으로 조용하던 사무실에 생기가 돈다. 역시 사람은 3대 욕구 중 식욕이 가장 큰가.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도 또 주문해 주시고요. 자주 주문해 주시면 단골손님 할인 팍팍 들어갑니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홀연히 떠났다. 내가 주문한 밥을 받아 들고 뚜껑을 열었다. 소름이 돋는다. 그놈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아는 건지. 주문서에 별도로 적지도 않았는데. 내가 주문한 메뉴에서 마늘향이 나지 않는다.      

“근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주문한 거예요?”     


갑자기 궁금해졌다. 평소에 이곳에서 주문하지 않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서 점심을 주문했을까.     


“아! 얼마 전에 광고가 뜨더라고요. 우리 회사 사람들은 점심에 할인해 준다고!”

“아... 할인이요.”

“네. 꽤 많이 해주더라고요. 음식 맛도 좋고, 다음에도 여기서 주문해 먹어야겠어요.”          


시간을 내주지 않으니 이젠 돈을 쓰시겠다? 그래 누군가의 관심을 받으려면 시간과 돈을 써서 노력해야 하는 건 맞는데. 그게 지금은 아니지.      


-음식 맛있어? 마늘 안 넣었어.     


진짜. 어쩌자는 거니. 이 무지하게 커다란 강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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