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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08. 2024

피우지 못한 꽃 (6)

날이 갈수록 엇나갈 뿐이었다

  멍해지는 날이 늘어났다. 집에 있는 시간 중 절반은 눈물을 흘렸다. 뭔가 이상했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무언가가, 정말 중요한 그 무엇인가가 결여된 것만 같았다. 마음이 병들었지만 정신과를 보내달라고 할 엄두는 들지 않았다. 향할 곳 없는 분노는 내 팔을 향하기 시작했다. 커터칼을 꺼내 들어 손목을 그었다. 얇은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따끔한 느낌에 정신이 팔리자 머릿속에서 날뛰던 괴물이 잠잠해지는 느낌이었다. 웃음을 터트렸다. 눈물을 흘리면서. 시궁창에 처박힌 느낌이었고,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이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손에 닿는 모든 날카로운 물건들로 울분을 스스로에게 풀었다. 칼. 샤프. 철로 만든 자. 물어뜯어 톱날과도 같은 모양이 되어버린 손톱. 살이 아물고 딱지가 지면 미친 듯이 가려웠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역겨운 감상팔이 조언들을 보고 들을 때마다 비웃음으로 받아칠 뿐이었다.


  갈수록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어려웠다. 분노와 우울이 하루하루 나를 좀먹고 있었다. 불면증이 심해졌고 밤이 되면 잠을 자지 않았다. 그 탓에 학교에서는 거의 깨어있을 수 없었다. 모두가 날 수업시간에 하루종일 잠이나 쳐 자는 패배자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조차 지겨웠다. 솔직히 부러웠다. 즐거우며 동시에 치열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다른 아이들. 그들에게는 이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이며 동시에 자존감을 형성하는 재료가 되리라. 나에게는 아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내 모습은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미 있고 아름다운, 열정으로 가득한 청춘만화 같은 학교생활은 진작에 집어치웠다. 나와 주변이 함께 찍은 낙인은 깊고 검은 흉터를 남겼고, 그건 지워지거나 회복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하루하루 나를 좀먹으며 속에서부터 나를 무너뜨렸다. 나 자신조차 미워졌다.


  나는 학교 바깥에서 살 길을 찾고자 했다. 다른 학교 사람들과 어울리는 활동을 많이 했다. 물론 학교에서도 어린 시절의 재능이 튀어나와 종종 칭찬과 격려를 받곤 했지만 더 이상 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재능은 나에게 더 이상 축복이 아니었다. 나를 뜨겁게 지져대며 괴롭히는 인두와도 같은 것이었다. 학교에서 도망치는 날들이 많아졌다. 대회를 운영하고 학교 밖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나의 지옥에서 눈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망가진 내 성격으로는 그조차도 힘겨운 일이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늘 구설수에 올랐다.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내 안에 작게 남아있는 따뜻함을 알아보는 사람들.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그런 시선들이 한데 뭉쳐 나를 때렸다. 이용당하고 버려지고, 또다시 언어의 심판대에 오르기를 반복했다. 빈약한 자아는 중심을 잡아주지 못했다. 매 순간 휘청거리며 환경에 흔들렸다. 피곤하고 버거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인간관계는 대차게 꼬여있었다. 바로잡을 방법이 보이지도 않았으며 사실 굳이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었다.


  동시에 늘 어머니와 충돌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싸울 것 같으면 차라리 자리를 피하라며 차선책을 던져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화가 나면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렇게 갈등과 회피를 반복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싸우는

것과 뒤를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였다. 그게 옳은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하루하루 싸워나가는 것조차 지겹다고 느끼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나를 육교에서 살렸던 그 목소리는 커졌다.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그 목소리는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를 구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시 책상에 앉아보았다. 집중력이 채 5분을 가지 못했다. 책에 쓰여있는 글씨는 단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머릿속은 나에게 학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자해 충동과 우울한 기분, 몇 년간 축적된 트라우마가 교대로 내 머리를 헤집어놓고 있었다. 이해와 추론, 창작은 빨랐지만 암기는 약했던 나에게 오랜 시간 포기했었던 내신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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