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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15. 2024

밑 빠진 독 (7)

당신과의 마지막 기억조차 이따위일 줄은 몰랐다

  십 대의 끄트머리.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랐다면 자아를 형성하고 스스로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니었다. 주변인에 대한 집착과 실망이 반복되었다. 나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 약자였다. 그리고 여전히 집은 나를 편하게 해 주지 못했다. 남은 것은 없었다. 나는 열등생이었고 양아치였으며 반항아였다.


  반쯤은 나를 포기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뒤늦게나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어머니의 폭언과 학대는 점차 줄어들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식사를 하다 말고 나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미안해. 어릴 때 너를 혼자 두지 말았어야 하는데.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다. 눈에 어둠이 가득하구나. 그냥 엄마가 다 미안해.”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경멸하는 눈으로 어머니를 쳐다봤다. 어이가 없었다. 10년 넘게 나를 지옥에 처박아놓고는 저런 말 한마디로 퉁 치려 하다니. 나는 가족에게 아무런 정을 붙이지 않기로 결심한 지 오래였다. 매일매일이 저주스러웠고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이 하루 중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어머니를 투명인간으로 대했다. 한 마디라도 말을 섞으면 지난 시절의 악몽들이 일제히 되살아나며 화가 치밀었다. 뒤늦게 날 아끼는 척하려는 태도가 가증스러웠다.


  집에 들어가지 않는 시간이 늘었다. 뒤늦게 다시 시작해본 공부는 이미 책을 놓은 지 오래였기에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무의미하게 친구들을 만나 떠들며 시간을 때우고, 집에 돌아가기 싫어 길거리를 서성거렸다. 수시 원서 접수와 수능 날이 다가왔지만 나는 재기하지 못했다. 꺾인 마음과 굳어버린 머리. 결국 입시는 끝났고, 패배감에 휩싸인 채 주저앉은 나의 초라한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그때. 시내의 한가운데에 있는 육교에 올라간 바로 그때. 나는 죽었어야 했다. 나지막이 속삭이며 눈물을 흘렸다.


수능과 입시는 끝이 났고, 당연히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없었다. 모두가 고생한 스스로와 가족, 친구들을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친구도, 가족도, 추억도, 결과도 없었다. 버려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미 깊게 파인 내 어린 시절의 흉터는 평생 나를 괴롭힐 것이며, 그 누구도 메워줄 수 없다는 것을.


  지쳤다. 그래도 어찌어찌 십 대는 끝이 났다. 더 이상 빌어먹을 학교에서 고통받을 필요도, 집이라는 지옥에 갇혀있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집을 떠나 재수를 마치고 반드시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가면 벗어날 수 있다고,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재수를 반대하셨다. “양아치 같은 새끼. 아무것도 못 이뤄놓고 니가 이제 와서 재수하면 뭐가 달라질 거 같냐. 재수하는 척 놀러나 다니려는 거 아니야?”


  또다시 쏟아지는 폭언과 무시. 환멸과 분노가 섞여 기침처럼 튀어나왔다. 나는 대들었다. 왜 나를 믿어주지 않는지.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나를 떳떳하게 잘 키웠다고 말할 수 있는지. 서로 고성을 지르며 상처 입혔다. 그 사이 키가 조금 커 버린 내가 다가가는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어머니는 내 목을 조르며 손톱으로 할퀴었고, 나는 손을 뿌리치려다가 어머니를 밀쳐 넘어뜨렸다. 모든 게 최악이었다. 지겨웠다. 이건 가족의 모습이 아니다. 울고 있는 어머니와 한숨을 쉬는 나. 그리고 그게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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