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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29. 2024

걸을 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9)

선택은 가끔 강요된다

  연명치료 기계를 제거하고 몇 시간 후. 바이탈 선은 일자를 그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람의 죽음을 봤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내 어머니였다. 내 어린 시절을 끔찍하게 만든 장본인인 동시에, 내가 나를 사랑해 주길 바랐던 유일한 사람.


  입관하기 전 어머니와 인사를 하라며 시간이 주어졌다. 화장으로 덮어도 가릴 수 없는 창백한 안색. 차갑게 식어 굳어버린 돌덩어리 같은 손. 내가 처음으로 본 사람의 죽음. 미동도 없는 시체가 말해주던 죽음의 현실. 나는 울지 않았다.


  스무 살의 나이. 모두가 첫 술자리와 설레는 학교생활을 기대하며 젊음을 즐길 때, 나는 상복을 입어야 했다. 무거웠다. 집에 가서 물건을 챙기고 옷을 갈아입었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멍한 상태로 조문객을 맞이했다. 며칠 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머리가 아팠다. 이런저런 말들을 전하는 어른들. 친구를 끌어안고 눈물을 터트리는 누나. 나를 걱정하며 조문을 온 몇몇 지인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나는 혼자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지를 못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병원 중환자실에서부터 상주 노릇을 하는 3일이 끝날 때까지,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속으로 삼킨 눈물은 독기로 바뀌어 내 영혼에 쌓이고 있었다. 마음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지만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발인이 끝난 날 아버지에게 차에 물건을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며 혼자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도 없는 주차장 벽에 기대어 비명을 질렀다.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이미 내가 자라온 길은 최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아픔을 나에게 던졌다. 원망스러웠다. 멋대로 나를 세상에 던져놓고 나에게 끔찍한 나날들을 만들어주고는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어머니가 미웠다.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더 좋은 자식이 될 수는 없었을까. 내가 더 나은 아들이었다면 뭐라도 달라졌을까. 원망의 화살이 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방향을 잃어버렸다.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허전했다. 우리 집 강아지는 엄마가 앉아있던 소파 자리를 하염없이 긁어댔다. 마음의 병이 점점 커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에 압도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은 사람이 남긴 삶의 여운은 산 사람의 것이다. 나는 그것을 고스란히 견디고 있었다.


  학원으로 돌아가기 전 3주 정도를 쉬기로 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혼란. 후회. 우울. 공포. 원망. 다시 혼란.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를 악물고 버틴 아이의 이야기는 허무하고 잔인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억눌렀던 눈물이 또다시 터져 나왔다. 그건 비명이었다. 아직 채 어른이 되지 못한 그 아이가, 그럼에도 어른인 척을 해야 했던 아이가 내 안에서 서럽게 울어다는 것이었다. 신이 있다면 당장 달려가 면상을 갈기고 싶었다. 어린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냐고. 왜 나에게 이런 것들을 감당하게 만드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시간은 나의 감정을 무시하고 흐른다. 아직 채 아물지 못한 상처를 억지로 틀어막기로 했다. 바람직하고 건강한 선택은 아니겠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독하게 나 자신의 증명에 매달리는 것이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짐을 챙기고 다시 서리가 얼어있는 학원으로 돌아갔다. 마음을 달랠 틈은 없었다. 오랜 시간 공부에 손을 뗀 탓에 성적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지치고 나약한 신체는 장기간의 수험생활 레이스를 견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나에게 주어진 패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불평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어둡고 탁해진 영혼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내가 만든 전쟁터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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