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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Oct 06. 2024

가야만 하는 길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움직여야 했다

  현실은 냉정했다. 모두가 나에게 말했다. “이제 다 컸잖아. 어머니 없이도 잘할 수 있지?” “3주면 오래 쉬었네. 이제 다시 공부해야지. “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잔인하게 느껴졌다. 고작 3주로 괜찮아질 리가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은 단순한 상실이 아니었다. 1월 21일. 추위가 매섭던 겨울날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어머니와의 작별은 결국 내가 자식으로서 사랑받을 기회를 영영 박탈당했다는 걸 의미했다.


  참는 일에는 도가 터 있었다. 감정을 억눌렀다. 슬픈 감정은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었다.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히며 분노가 터져 나는 날들이 늘어났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운동이었다. 담배를 끊고, 배운 적도 없는 웨이트를 했다. 해본 적 없는 강도의 무리한 운동에 관절과 인대가 망가지는 게 느껴졌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나약했던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루에 2-3시간의 운동. 나머지 시간은 공부. 몸이 견디지를 못했다. 과부하가 왔지만, 거기에서 오는 고통마저도 나에게는 연료였다. 에너지 음료를 하루에 두세 캔씩 마셔댔다. 그러나 내 진짜 고통은 몸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삶은 내 정신을, 내 존재를, 가장 끔찍한 순간에 시험대에 올리고 있었다.


  하루는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시야가 흐려져 글자가 보이지 않아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휴지를 뽑고 눈물이 더 많이 나는 왼쪽 눈을 틀어막았다. 오른쪽 눈으로 글자를 보며 계속 문제를 풀었다. 수시로 감정이 날뛰며 집중을 방해했다. 역겨운 느낌이 속에서부터 차올랐지만 그마저도 무시했다.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세상은 내 사정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부조리와 불행을 선사하는 삶에게 엿이나 처먹으라고 외쳐야 했다.


  성적은 점점 올랐다. 무리한 탓에 갈수록 몸과 마음이 망가졌지만 영혼에서 피어오른 독기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내 안의 그 목소리가 나를 매일 채찍질했다. 병든 영혼은 행복과 낭만을 앗아간 대신 투지와 지독함, 멈추지 않는 추진력을 선물했다. 거울 속의 나 자신이 매일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물러설 곳은 없어. 도망칠 곳도 없지. 네 꼴을 봐. 말라비틀어진 약골에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지. 기댈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은 네 손으로 밀어냈고, 매번 집안 꼴 핑계를 대며 네 삶을 방치했잖아. 그 결과가 이거야. 계속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어. 싸워서 이겨내고 스스로를 깎아내. 뭐라도 이루어내지 않으면 넌 어머니가 계신 은하수공원 납골당에 돌아가는 날, 아무 말도 못 하고 부끄럽게 고개를 처박고 있게 될 테니까.


  날이 갈수록 공부량과 몰입도가 늘었다. 기상과 동시에 아무도 없는 기숙학원의 헬스장으로 달려갔다. 무식하게 무게를 들고 개수를 늘려가며 턱걸이를 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이 벅차오르고, 사지가 찢어지는 듯한 근육통이 하루하루 나를 괴롭혔다. 몸은 점점 강해졌다. 온몸의 근섬유들이 튀어나왔다. 더 이상 158cm에 31kg이었던 빈약한 아이의 몸이 아니었다.


  제자리걸음이던 성적은 어느 순간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어린 시절의 재능이 남겨둔 선물이었을까. 특히 영어와 사회탐구 실력은 시험시간의 절반을 남겨둘 정도로 상승했다.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점점 불어났지만 나는 그것들로 나를 다시 만들어가며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수능을 한 달 앞두고, 학원의 환경조차 방해된다고 느껴졌다. 퇴소 상담 후 집으로 돌아갔다. 14만 원으로 스터디카페 한 달 권을 결제한 후 공부를 시작했다. 6시에 일어나 씻고 식사를 마치고 스터디카페로 뛰어가는 데에 15분.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시간 외에는 전부 공부에 투자했다. 목표했던 지방 국립대 정도의 성적을 넘겼고, 이제는 서울로 가고 싶었다.


  제때 치료하지 않은 마음의 상처가 1년 동안 천천히 썩어 들어갔다. 악몽을 꾸는 날이 많아졌다. 우울과 불안의 파도가 점점 더 자주 나를 덮쳤다. 손목에 딱지가 진 날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눈에 보이는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병들어가는 마음은 단시간에 내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불한 대가였다. 그제서야 선택과 책임의 의미를 깨달았다. 하나를 고른다는 선택은 나머지를 포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일이다. 나는 투쟁과 역경, 그리고 성장을 선택했고, 대신건강하고 여유로우며 사랑이 넘치는 내 인격의 일부를 완전히 포기했다.

  

  그렇게 지독했던 시간이 흐르고 수능날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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