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천국과 지옥의 나라

지옥의 이집트 카이로에서 천국의 이집트 다합으로 가다

by 오아시스


꽉 찬 가방보다 가득한 추억


여행을 떠나기 전, 빈 캐리어를 활짝 펼치고는 무엇을 담을까 고민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나면 꾹꾹 눌러담은 옷과 생활용품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기억들이 채워진다.


인생에 다시 없을 중대한 경험들과 삶에 대한 철학들. 젊은 청춘의 뜨거운 도전과 열정, 숭고, 사랑 등을 온 세계로부터 담아온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소멸되는 것이 우리의 기억이지만...


'너와 나의 기억도 분리된 일상이 시작되면 끝내 소멸하고 말까.'

차디찬 겨울 밤. 군대에 간 동생이 좀처럼 인생에 방향을 잡지 못하는 내게 양귀자의 <모순>을 읽으라며 연락했다. 그 책은 자극이 되었다. '지금부터 내 인생에 온 생애를 걸겠다.'는 주인공의 결심에 동요했다. 20대 중반의 나는 내 삶에 관해 놓치고 있는 것을 탐색하고 싶었다. 그 해답이 어디있을까. <모순>의 주인공에게는 '신랑감 찾기'였고, 나에게는 '여행'이었다.



20대 중반, 이집트로 떠나다


그 다음 날, 1년 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이집트행 비행기를 끊었다. 해답을 찾기로 결정한 곳은 홍해바다에 위치한 이집트 작은 시골마을 '다합'이었다.


그곳은 신기하게도 제법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여행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리우며, 한 번 여행하면 가지고 있던 비행기 티켓을 찢고 더 머물게 된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한인들은 게스트하우스부터 다이빙강사, 인플루언서 등으로 활동하며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까?기대 샘솟았다.


낯선 이집트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의 삶의 태도, 노하우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해외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싶었다. 나의 세계가 한국으로 국한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더 넓은 세상을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온 세상의 것을 투명하게 바라보자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그 투명함이 때로는 집단의 편견 속에서 소외 받을지라도.



무법도시 카이로


비행기 예매 직전에 발견한 아시아나 항공 땡처리. 그 덕에 이집트를 무척 저렴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딱 그때까지였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니 지옥이 펼쳐졌다.


여행사들은 각종 깃발을 흔들며 순식간에 승객들을 데려갔고, 홀로 남은 나는 유심사에서 이집트 유심을 끼웠지만 공항 밖에서 좀처럼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전에 쓰던 한국 유심은 또 어디로 사라진건지... 이집트는 사막이라 비도 안온다던데, 비가 와서 축축한 바닥에 물을 튀기며 캐리어를 질질 끌었다. '조금만 지나면 되겠지'하는 기대와 달리, 간신히 카카오톡만 작동하는 인터넷 속도로 우버를 부를 수 없었다.


'엄마, 나 망한 것 같아'


메세지를 입력하자 엄마는 해결할 수 있다며 절망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공항 안으로 큰 캐리어를 끌고 들어갔다. 유심사에 찾아가니, 그제야 정상적인 속도의 인터넷으로 만들어주었다. 어떻게 고쳤냐고 물으니,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My magic이라고 답하는 직원.


음... 이 나라에 대한 불신이 더 커졌다.


하얀 전통 복장의 남자들이 '택시! 택시!' 거리며 달려드는 것을 애써 피하며, 간신히 우버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거리에 굶주린 개들이 큰 소리로 짖으며 달려드니 숙소 밖을 나가기 무서웠다. 왜 광견병 예방접종을 미리 하지 않았는가 후회가 막심했다.


여자들은 까만 천으로 전신을 가리고, 남자들은 외국 여자인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건물들은 흙빛의 모래집들 같았는데, 낮에도 그 풍경이 무척 황량해보여 겁에 질렸다.

사막에서 만난 해외 여행객들은 어찌 혼자 이곳을 여행 왔느냐며 한 마음으로 나를 걱정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신호등이 없어 8차선 도로를 목숨걸고 건너야 했고, 피라미드의 입구 앞에서 사기꾼들이 택시를 가로막아 돈을 강제로 지불하게끔 하기도 했다.


마침내 12시간의 야간 버스를 타고, 5시간의 검문을 거쳐 정오 쯤 다합에 도착하게 되었다. 카이로는 다시 돌아갈 자신이 없다.



다합은 천국이다


다합에 도착한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버스 안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반복적으로 여권을 확인할 때, 긴장감이 감돌며 '이 나라가 여행을 해도 되는 나라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르면서 청량한 사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기대가 감돌았다.


버스에서 내린 후, 택시 아저씨에게 구글맵으로 처음 가보는 숙소 길을 안내했다. 얼마나 돈을 쥐어줘야 할까 내심 걱정스러웠지만, 무턱대고 길을 안내하니 파릇파릇한 꽃이 피어난 귀여운 대문 앞에서 한국인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일할 스탭이었. 그는 택시기사에게 적당한 돈을 건넸다. 그리고 나를 집 안으로 데려가 시원한 음료를 주었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카이로에서 고생한 일화를 풀으니, 자신은 애초에 카이로를 거치지도 않고 바로 다합으로 왔다고 했다. 제법 부러운 선택이었다. 궁궐 같이 넓고 쾌적한 숙소를 둘러보며 마음 속으로 환호성을 냈다.


'이렇게 좋은 곳으로 오다니, 이집트에 온 건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


간단한 샤워 후에 둘러본 다합의 풍경은 평화로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카이로와 다합이 같은 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노을지는 풍경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아직도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다.


다합 생활을 하면서 종종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카이로에서 죽어서 다합이라는 천국에 왔나봐요."


그리고 그 천국에는 천사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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