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앞에 살면 물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천사 같은 그들과의 만남, 처음은 설레는 거야
나를 처음 마주한 게스트하우스의 중년부부 사장은 마치 딸처럼 맞아주었다. 숙소 청소보다도 게스트와 낚시를 하고 시샤(물담배)를 피우며 삶에 대한 고민을 늘어놓기를 즐기는 나를 오히려 사랑스럽다며 예뻐해 주었다. 물에 허리만 잠겨도 벌벌 떠는 내 손을 잡고 처음으로 헤엄치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오전 6시 사막의 서늘한 바닷가 앞에서 함께 조깅을 하며 한국에서 좀처럼 몸을 쓰지 않아 망가진 체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그곳에서 특별히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무언가를 잘하지 않아도 행복했다. 몸은 다 큰 성인이지만, 마치 걸음마를 처음 떼는 아기처럼 새로운 세계를 적응해 나가는 것은 내게 생명감을 주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나의 부족함이 좋았다.
누구나 꿈꾸어보았을 일상
우리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아침 6시 30분쯤 일어나 대문 앞에 모여 조깅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 드립커피로 따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누어 마셨다. 그리고 9시쯤 되면 스노클링 장비를 들고 바닷가로 나가 물속을 헤엄쳤다. 알록달록 산호들과 물고기들을 구경하고, 모래 앞에서 푸르고 투명한 홍해의 풍경을 감상하였다. 점심이 되어 숙소로 다시 돌아오면 개운하게 샤워하고 뜨끈한 라면과 주먹밥을 만들어 먹었다. 우리에게는 평일과 주말의 개념이 따로 없었다. 바다와 햇살만이 영원한 곳이었다.
이런 곳이 지상낙원이 아닐까.
이렇게 살 수 있는 삶이 존재했다니.
기적처럼 느껴졌다.
만약 용기 내 퇴사하지 않고 한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겠지, 이런 행복을.
낯선 곳으로 향한 무모한 선택에 절실히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미지로 향하는 용기가 없다면 살아온 삶 이상의 것을 결코 경험할 수 없구나.
물 공포증,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다
"이제 슬슬 스쿠버 다이빙 배워야 하지 않겠니?"
물이 익숙해질 즈음, 중년부부 사장은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 수료를 제안했다. 다합은 그 유명한 바다 '블루홀'이 있는 스쿠버 성지인 만큼,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면 손님들과 더 재미있게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성취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쿠버 다이빙'은 약 400달러 안팎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5일 간 다이빙 센터에서 강사에게 오픈워터, 어드벤스 교육을 배우면 자격증이 발급된다. 자격증을 딴 이후에는 전 세계 다이빙센터에서 스쿠버 장비를 빌리고 다이빙을 할 수 있다. * 딥다이빙, 특수다이빙은 추가 자격증과 많은 다이빙 횟수 필요
강습을 예약하고, 주말에 미리 이론시험공부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공부를 도와주었고 오랜만에 '벼락치기'라는 것을 해보았다. 밤에 테라스에 마주 앉아 시샤를 피우며 다이빙 일지를 기록하던 Q언니. 물속의 세계부터 마음의 세계까지 응원하며 술 한 잔을 나눠마신 우리의 우정은 찬바람이 불던 계절과 다르게 뜨겁기만 했다.
수업을 받기로 한 아침, 새로 온 손님 H와 함께 배우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버디가 있으면 자격증을 딴 이후에도 함께 펀 다이빙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업은 하루 미루어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밤새워 공부하지 말걸 한탄하기도 했지만, 이미 모든 내용을 훑어본 터라 후련하기도 했다. 버디로 인해 수강료가 깎이는 것은 덤이었다.
다이버를 다이버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
첫날,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과 스탭까지 동원되어 수업에 참관했다. 강사와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 위해 통역을 도와주고, 물속에 들어갔을 때는 처음 배우는 우리의 영상을 비디오로 담아주었다. 어설프게 이해하고 들어가니 물속에서 소통이 안되기도 하고, 호흡기 떼기 훈련에서 입으로 물을 잘못 들이마셔 살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중성부력
이었다. 중성부력(Neutral Buoyancy)이란 물속에서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를 뜻한다. 즉, 물속에서 그대로 멈춰서 '둥둥' 떠 있는 상태다. 너무 물 밑에 있으면 산호와 해양생물을 건드릴 수 있고, 너무 물 위에 떠있으면 수면 위로 빠르게 올라갈 수도 있으니 물속에서 적정한 높이를 조절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이버들은 이 중성부력을 BCD(부력 조절 장비)와 숨 쉬는 양 조절로 맞춘다.
나는 중성부력을 맞추는 것에 무척이나 서툴렀다. 강사가 조금만 눈길을 주지 않으면,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르고 말았다. 3일 차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강사가 앞에 가고, 버디와 함께 뒤따라가던 중 서서히 수면 위로 몸이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수심 15m가량 되는 깊은 물속에 있는 상태였다. 버둥거리며 내가 떠오르고 있음을 표현했지만, 그럴수록 더 빠르게 올라갈 뿐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심각하면서 우스웠다. 버디는 나의 떠오름을 먼저 눈치채고 강사를 부르려고 손을 뻗었지만, 강사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직진하며 헤엄칠 뿐이었다. 강사가 뒤돌아봤을 때는 이미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떠오른 후였다. 이 기분, 마치 천사가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것만 같았다.
아... 망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귀가 먹먹해지고 몸이 어지러웠다. 그때 비디오를 담아주던 게스트하우스 남자사장님이 나를 구하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 몸을 붙잡았다. 그리고 두 눈을 마주 보고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법을 보여주었다. 그를 따라 하며 깊게 내쉬고 들이시며 조금씩 몸을 가라앉혔다. 물속으로 떠오를 때보다 내려오는 것은 더 까다로웠다. 귀에서 팝콘이 튀기는 듯한 느낌, 먹먹한 고통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물속에서는
이퀄라이징(equalizing)이 필요하다. 이는 물속으로 내려갈 때 귀 안의 압력을 평형(균형) 맞춰주는 행동이다. 코를 막고, 입을 다문 채 '흥!' 하듯 바람을 내뿜는 '발살바법'이 가장 기본적이며, 이외에도 침 삼키기, 하품하기, 턱 움직이기 등의 '프렌젤법'으로 할 수도 있다.
물속으로 내려갈수록 수압이 세지기 때문에 이퀄라이징은 반드시 필요하다. 자칫 너무 빠르게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고막이 손상될 수 있다. 다행히 천천히 물속으로 내려가 고막의 손상 없이 무사히 수업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의 공포는 다이빙에 대한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졌다.
'강사의 손을 잡고 가지 않으면 나는 또다시 물 위로 떠오르겠구나.
정말 내 실력이 안전해질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말자.'
나는 대놓고 강사를 'Daddy'라고 부르며 아빠 다이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