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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희 시인의 '봄나들'이를 청람 평하다

청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Sep 24. 2024









                         봄나들이



                               시인 배선희






봄빛은 마술사다
암상하던 가지마다 연둣빛 옷을 만들어 입혔다.
솜씨 좋은 마술사!
가지마다 꽃초롱을 매달아 나를 지켜보고 있다

봄빛이 되고 싶어 봄나들이에 나섰다. 꽃물결로 파도치는 봄배를 타고
봄나들이 노를 저어 꽃보라를 일으켰다.

봄볕은 예술가다
저리도 많은 나무 잎들을 어찌 다 재단했을까?
바람을 녹여 만든 꽃을 들여다보면 바람결에 실밥이 풀려 하느적거린다.

봄나들이 꽃배엔 꽃내음이 물살을 가르고 골골이 미어지게 담긴 풋내음이 넘쳐난다.

봄이 가지고 온 빛은
세상을 가장 공정하게 다스린다
대지 속에 꽁꽁 숨죽이며 숨어 살던 숨소리를 잉태한 작은 씨앗들에게도 빈틈없이 나누어 주어
물살을 일으킨다

이때쯤이면 나도 들꽃으로 피어난다 봄나들이 배에 실려오는 한 송이 들꽃!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배선희 시인은 자연과 삶을 고유한 시적 언어로 표현해 내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주로 자연의 섬세한 변화를 포착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과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초점을 맞춘다. '봄나들이' 역시 그러한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봄이라는 계절이 가진 다채로운 아름다움과 생명의 힘을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섬세하게 그려내며,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표현한다. 시인은 봄의 생동감을 마술사와 예술가로 의인화하면서 자연의 힘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사유를 독창적으로 담아낸다. 이러한 표현은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모든 존재가 봄의 에너지 안에서 하나가 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봄빛은 마술사다 / 암상하던 가지마다 연둣빛 옷을 만들어 입혔다."

첫 행에서 시인은 봄빛을 '마술사'로 표현함으로써 봄이 가져오는 생명의 기운을 신비롭게 강조한다. 겨우내 '암상하던' 가지들이 연둣빛 옷을 입는 것은 자연의 놀라운 변화와 생명력의 회복을 상징한다. 여기서 '암상하다'라는 표현은 어두운 겨울의 상태를 암시하며, 봄의 도래로 인해 비로소 생기가 돌아오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마술사라는 이미지는 봄이 마치 마법을 부리듯 자연을 변모시키는 힘을 가진 존재로서,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솜씨 좋은 마술사! / 가지마다 꽃초롱을 매달아 나를 지켜보고 있다."

'솜씨 좋은 마술사'라는 표현은 자연의 변화 과정이 얼마나 정교하고 아름다운지를 나타낸다. 가지마다 매달린 '꽃초롱'은 봄의 상징적인 요소로, 시적 화자를 응시하는 듯한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봄의 생명력이 화자에게 다가와 자신을 새롭게 보고 깨닫게 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꽃초롱이 마치 누군가를 바라보듯 표현된 것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암시하며, 자연이 주는 영감을 통해 화자는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봄빛이 되고 싶어 봄나들이에 나섰다. 꽃물결로 파도치는 봄배를 타고 / 봄나들이 노를 저어 꽃보라를 일으켰다."

이 구절에서 화자는 봄의 한 부분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낸다. 봄의 빛을 갈망하며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자신이 봄의 일부로서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나타낸다. '꽃물결로 파도치는 봄배'는 자연의 역동적인 변화를 상징하며, '꽃보라'는 이러한 변화의 역동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봄나들이라는 행위는 단순한 산책이 아닌, 봄의 생명력을 느끼고 그것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시인의 철학을 드러낸다.

 "봄볕은 예술가다 / 저리도 많은 나무 잎들을 어찌 다 재단했을까?"

봄의 빛을 '예술가'로 표현한 부분에서는 시인의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잘 드러난다. '재단했다'라는 표현은 수많은 나뭇잎들이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는 모습을 예술가의 작품으로 비유함으로써,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봄의 빛은 마치 모든 생명체의 형태와 색채를 정교하게 재단하는 예술가처럼, 자연의 풍경을 창조한다. 이는 자연의 섬세함과 미적 감각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구절이다.

 "바람을 녹여 만든 꽃을 들여다보면 바람결에 실밥이 풀려 하느적거린다."

여기서 시인은 바람을 꽃으로 형상화하여 그 속에 숨겨진 움직임을 묘사하고 있다. '바람을 녹여 만든 꽃'이라는 표현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생명체의 유기적 관계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람결에 실밥이 풀린다는 묘사는 자연의 조화로움과 유연성을 상징하며, 모든 것이 하나의 흐름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바람이 꽃을 흔드는 모습은 그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자연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

 "봄나들이 꽃배엔 꽃내음이 물살을 가르고 골골이 미어지게 담긴 풋내음이 넘쳐난다."

'꽃내음'과 '풋내음'은 봄의 시각적 이미지와 함께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 독자에게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골골이 미어지게'라는 표현은 그 향기가 얼마나 강렬하고 풍부한지를 드러낸다. 이는 독자들이 봄의 향긋한 냄새를 상상하게 하며, 감각적으로 시를 느끼게 만든다. 꽃내음이 물살을 가르는 장면은 자연의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봄이 가지고 온 빛은 / 세상을 가장 공정하게 다스린다 / 대지 속에 꽁꽁 숨죽이며 숨어 살던 숨소리를 잉태한 작은 씨앗들에게도 빈틈없이 나누어 주어 / 물살을 일으킨다"

봄의 빛을 '공정하게 다스린다'라고 표현한 것은 자연의 조화와 공평함을 강조한다. 봄의 빛은 생명이 숨겨져 있던 곳에까지 골고루 퍼지며, 모든 생명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자연이 지닌 무차별적이고 공평한 생명력을 상징하며, 봄의 빛이 씨앗을 키우고 물살을 일으키는 장면은 생명의 순환과 재생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시인의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이때쯤이면 나도 들꽃으로 피어난다 봄나들이 배에 실려오는 한 송이 들꽃!"

마지막 구절에서 화자는 자신을 '들꽃'으로 비유하며, 봄의 한 부분이 되어 피어나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자연과의 일체감을 나타내며, 봄의 생명력과 함께 자신도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봄나들이 배에 실려오는 한 송이 들꽃'은 시인의 존재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겸손하고 순수하게 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배선희의 시 '봄나들이'는 자연의 변화와 그 안에 담긴 생명력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 시인은 봄을 마술사와 예술가로 의인화하여 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는 순간을 노래한다.
이 시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자연의 섭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드러낸다. 또한 감각적인 이미지와 섬세한 표현을 통해 독자들이 봄의 생명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생명력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자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시인은 자연의 본질과 인간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독자들에게 자연에 대한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이 시는 자연이 가진 힘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며,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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