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달삼의 대화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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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아도, 그렇지 않아도
청람 김왕식
달삼이 책장을 넘기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님, 궁금한 게 하나 생겼습니다.”
“또 어디가 걸렸느냐.” 스승은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그가 울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울려고 하던 참이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렇지 않아도’가 맞는 말인가요? 저는 ‘그러지 않아도’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스승은 찻잔을 내려놓고 창밖의 느티나무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은 질문이다. ‘그렇지 않아도’와 ‘그러지 않아도’는 겉보기엔 비슷하나 속내는 다르단다. 마치 마음과 몸처럼.”
“마음과 몸이요?”
“그래. ‘그렇다’는 상태를 가리키지. 마음속의 생각이나 상황을 대신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배가 고팠다. 그렇지 않아도 밥을 먹으려 했다.’
배고팠던 상태, 그 마음이 이미 있었다는 뜻이지.”
“아… 그럼 ‘그러다’는 움직임인가요?”
“그렇지. ‘그러다’는 행동을 대신해 주는 말이다.
‘네가 그러니까 나도 그러지.’
이건 실제로 무언가를 한 다음의 반응이지.
그래서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울고 말았다’처럼 동작을 이어주는 말이 필요할 땐 ‘그러지’가 맞는 거다.”
달삼은 한참 생각하다 물었다.
“그러면 아까 문장, ‘그가 울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울려고 하던 참이었다’는 맞는 말이네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장은 울 ‘행동’ 자체보다는 울고 싶은 ‘상태’, 즉 마음을 말하는 거지. 마음이 이미 그쪽으로 기울어 있었으니 ‘그렇지 않아도’가 더 자연스럽다. 울려고 하는 참이었다, 즉 이미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던 것이니까.”
달삼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멋지게 설명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스승도 따라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너에게 이야기해 주려던 참이었다.”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치듯 들어왔다.
말은 곧 마음이었고, 마음은 몸으로 이어졌다.
달삼은 그날, 말 한마디에 담긴 결 하나를 또 배웠다.
그렇지 않아도 깊었던 언어의 세계가, 그날따라 더 넓게 느껴졌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