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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아르주아~산티아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by 순쌤

아르주아~ Lava colla 28km (768.9km)

숲길이 너무 아름답다. 나무가 무성하다. 이전에 걸은 길은 마치 다 까묵은 듯, 며칠간 여기서 걸은 숲길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 뭐지?

유칼립투스 나무, 하늘까지 길게 솟은 나무를 쳐다보느라 목이 아플 정도다.

나무껍질은 품위 없이 너덜거리는데, 위로는 그렇게 품위 있게 뻗을 수가 있을까.


오늘은 아침에 해가 떴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해로 인해 나타난 그림자 사진을 찍다.

마른 숲길! 젖지 않은 넓은 숲길이 벅차도록 아름답다. 우리는 오래 살 것 같다고 또 얘기한다. 이 푸르름 덕분에 말이다.

그러나 역시 비가 오기 시작하고 예전에 들렀던 식당이 나타나 반가운 맘으로 들어간다. 토스트와 샐러드, 그 주스!( 그때는 매우 신기했었는데, 지금은 어느 카페나 바에 다 있다)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계속 비가 온다. 우비를 입고 길로 나서니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다. 이 길은 이런 게 좋은 점이다. 언제나 길엔 걷는 사람이 있다는 것.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며 멈추지 않으니 우리가 멈추기로 한다. 적당한 숙소가 나타나지 않아 저렴한 호텔로 들어오다. 어둑신하고 눅눅하고 맘에 들지 않으나, 10km만 남겨둔 지점이다. 수건이 있고, 욕실이 있고, 내일 7시에 출발하면 10시도 안 돼서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것, 그냥 자자.


식당에서 메뉴델디아를 먹다. 호주인 부부와 같이 앉아 대화를 나누다. 남자는 회계사, 여자는 조산원, 여자의 60세 생일을 맞아 온 여행이란다. 발음 진짜 듣기 힘들다. 같은 영어인데도 a 발음부터가 다르니 어렵다. ‘I can~ ’이걸 ‘아이 칸~’ 처음엔 뭔소릴 하는지, 워쩐데...

그들은 영어가 되는 사람과 식사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좋아하는데 난 힘들고 영어 잘 안 된다. 얘기하다 보니 그들은 정말 기본적인 스페인 단어도 모르고 스페인을 여행하고 있다. 이거 너무 날로 여행 다니는 거 아님?


내일은 아들 생일, 오늘 큰엄마가 미역국이랑 반찬을 해주셨다고 아이들이 전해온다. 감사!

우리는 생일 선물로 내일 일찍 도착하는 거다. 이게 뭔 의미겠냐만, 그냥 의미 부여를 하는 거다. 우리 아이 생일에 맞춰 산티아고 입성!


라바코야~Santiago! 10km (778.9km)

예전에 걸었던 길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산티아고에 들어설 때 도로가 공사 중이어서 복잡하고 감흥이 없었는데 지금은 깨끗이 정비가 되어있고, 입구에 ‘SANTIAGO’ 커다란 표지가 장식물로 설치되어 있다.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걷는다. 날은 흐리지만 저쪽 하늘부터 개고 있다.


산티아고 대성당!

성당의 탑이 보이는 길목부터 울컥했다. 광장에선 많은 이들이 흥분하고 사진 찍고 껴안고 인사하고...

우리도 껴안는다. 수고했다. 멋지다. 장하다!

파란 하늘이 축복처럼 성당 위에 펼쳐져 있다. 기념 촬영 찰찰찰~칵칵칵~!

트루디를 만나다. 반갑게 껴안는다. 그녀는 인증서를 받기 위한 과정의 어려움을 흥분하며 뭐라뭐라 엄청 심각하고 빠르게 설명하는데 몬 알아듣겠다. 결론적으로, 영적으로 좋은 경험이었는지 물으면 오케이 하라는 것! 당근이지!


사무실로 이어진 줄이 너무 길어 깜짝 놀라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걸었다고! 2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렸나 보다.

"오, 걷기가 제일 쉬웠어요..."

완주했다는 내용 하나와 799km의 길이를 걸었다는 것, 이렇게 인증서 두 장을 준다. 3유로.

이제 정말 끝났다. 난 터질 것 같은 꽉찬 마음인 것 같기도, 텅 비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엽서를 띄운다. 생일인 아들에게 약속은 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지킨다. 어찌 보면 일방적 신뢰와 사랑일 수도 있겠다. 엄마아빠가 건강하게 당당하게 목표를 이룬 것이 아이들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저녁 7시 30분에 산티아고 성당에서 미사를 보다. 7시쯤 갔음에도 이미 성당 안은 꽉 찼으며 미사는 장중하게 드려지다. 그 유명한 향로가 날아다니는 것도 보다. 처음 보는 멋진 장면에 입을 벌리고 본 것 같다.


성 야곱의 무덤이 있는 자리, 하여 산티아고! 그의 전설에 따라 이 길이 생겨났다만, 그래서 먼 이국 땅에서 이 길을 걷고자 여기를 걸어왔다만,

"내 안에 있는 신이시여!

당신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마음을 주소서, 그들이 사는 모든 땅에 오직 평화의 기운이 펼쳐지게 하소서. 그들이 그런 평화를 전하는 순례의 인생이 되게 하소서."


커다란 숙제를 끝냈다. 몸으로 때우는 것은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다. 더 큰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이 몸의 기특함, 이 몸을 주신 분에게 감사를... 그리곤 더 이상은 표현할 수 없다.

땅 끝 피스테라에서

*산티아고를 시작으로 함께 했던 이 등산화는 제주올레 때 밑바닥을 다 드러냄. 완벽한 헌신과 마무리에 경의를.


* 이 해가 가기 전에 '산티아고vs 제주 올레' 여행기를 마무리합니다.

하루 한 편씩 하루의 길을 짧게 요약했어요.

제게는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구요, 누군가에게 작은 팁이라도 되었음 하는 마음으로요.

소박하게 읽어주신 분께 감사를.

새해 새로운 복 많이 지으시길. 순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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