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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모리나 세카/ 김녕 서포구

by 순쌤

라바날~ Molina seca 25.5km(561.6km)

오늘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1500m가 넘는 산을 넘어가는 길, 철십자가가 있는 길, 환상적인 꽃길과 산맥을 보며 걷는 길이다.

그러나 내려가는 길은 완전.... 돌길에 내리막이 계속 이어진다. 무척 부담스럽고 힘들다. 프랑스노부부는 여길 어떻게 내려오실까 걱정하며 걷다.

고지에 많은 꽃이 피어있다. 이름 모르는 꽃이 대부분이지만, 개망초와 민들레와 아기똥풀이 그들이 지닌 최대의 아름다움으로 활짝 피어있다. 작은 꽃들 가까이 카메라를 맞춘다. 얘네가 그렇게 아름다운 꽃인 줄 몰랐다. 조팝꽃 종류인 듯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아름답다.

숙소는 3층, 침대가 참으로 오랜만에 1층짜리들이다. 우리 옆자리는 역시 프랑스 노부부, 인연이 깊어라. 벌써 세 번째. 우리보다 먼저 오셔서 침대를 배정받으시고 나가셨다. 속으로만 대단하다고 외친다. 노인이라 생각한다 할까 봐 드러내진 않는다. 두 분은 내게 노인에 대한 인상을 확 달라지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제 9일 남았다. 슬슬 아쉬워오겠지...


19코스 조천 만세동산~김녕서포구 19.4km

조천 만세 동산은 3.1 운동 기념탑이 높게 솟아있는 곳, 탑과 기념관을 보니 당시 아주 가열차게 선도적으로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상상이 된다.

바닷길로 들어선다. 하루 세 번 돌고래가 나타난다는 표지가 있는데, 언제일까. 함덕해수욕장. 역시 오늘도 물 색깔이 요염하다. 아니 아주 순하다. 관광지답게 사람들이 좀 있고, 모두 행복해 보여서 좋다.

곧바로 서우봉으로 올라가면서 함덕해수욕장을 내려다본다. 저기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겠다. 걷는 기분만 아는 나와는 좀 다른 차원의 천상의 기분일까?

오늘도 어제에 이어 19킬로가 넘는 긴 길이니 좀 긴장된다. 내일 한라산 일정 때문에 더 긴장하고 있는 거 맞다. 서우봉만 넘으면 오르막내리막은 없고 그냥 평지 걷는 거니까, 걸음을 빨리 하면 될 게다. 어제보다 한 시간 정도 여유 있을 듯.


너븐숭이 앞 의자에 앉다. 조용하다. 걷는 일행들은 너븐숭이 기념관이나 여기 순이삼촌 비석에는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간다. 아쉽네. 여기 서면 시간이 멈춰 선 깊은 침묵을 경험할 수 있을 텐데....

동복새생명교회가 나타난다. 그 이후로 내 좋아하는 숲길이 시작된다. 박노해 시와 함께 하는 길이다. 친구와 함께 걸을 이 길을 얼마나 기대했던가. 드디어 나타난 파란 표지의 시, 반갑다. 약 2km 정도 몇 개의 숲길이 이어진다. 각자 공감하는 시구 앞에 서면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친구도 시에 감동하고 길에 감탄한다. 역쉬!

곶자왈. 큰 나무들과 작은 나무들이 서로 엉켜 자유분방하게 뻗어 자라는 숲. 그 사이에 난 좁은 길은 예쁘고, 넓은 길은 참으로 평화롭다.


정말 몸이 되다. 두 다리와 발바닥을 쓰다듬고 싶다. 약간 쓸린 느낌이 드는데, 내일까지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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