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아진 듯하다. 차도를 옆에 두고 걷지만 차가 많지 않아 괜찮다. 계속 평야를 걸어오다. 눈 아래 야생화들과 눈앞 설산과 구불구불 이어진 산맥들을 보며 걷는다.
날씨는 역시나 화창 그 자체. 오늘은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우리가 하루 더 머문 사이 다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다 ‘라바날’ 마을에 도착해서 프랑스 노부부를 만나다.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노인네들이 정말 대단하시다. 숙소는 5유로. 프랑스부부와 같은 곳에 묵게 됐다. 아마 옆 침대에 펼쳐진 침낭이나 짐이 그분들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오셔서 또 반가워하신다. 처음으로 사진도 같이 찍자고 하신다. 할아버지는 영어를 전혀 못하시는데, 대화가 조금만 더 통하면 좋겠다.
내가 고등학생학생 때 배운 프랑스어는 언제 써먹을 수 있을까.
생장에서 만난 한국인 신자 부부를 만나다. 여기서 하루 더 머문단다. 천주교 신자에게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종교적 쉼이 되는 곳인 듯하다. 좋겠다.
까미노 중 몇 번의 미사를 드리면서 가톨릭의 형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성당의 장식하며 미사 시간의 여러 절차들을 보면 경건하긴 하지만 형식과 절차에 치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제단에 미사를 집전하는 분들, 특히 주교의 권위와 존엄이 지나치게 드러나 있는 것 같다. 형식이란 것이 내용을 담는데 어디까지 기여할 수 있을까. 형식의 중요함을 모르진 않다만...
나는 오늘날의 가톨릭의 종교적인 의미는 잘 모른다. 단, 둘 다 모두 하나님과 예수님께 기도드린다는 것, 구교와 신교 정도라는 것. 그러나 모든 것 떠나서 세상 곳곳에는 기도드리는 사람이 정말 많더라. 그래서 이 지구는 망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
18코스 간세라운지~조천만세동산 19.8km
도심의 길을 걷는데 참 복잡하구나.
동문 시장 옆으로 가서 동문 시장 안으로 갔다가 사람 많은 탑동으로 나와서 김만덕 기념관을 지나 김만덕 객주까지. 여기는 관광 올 때 들러볼 곳으로 하고 눈으로 한번 훑고 나온다.
사라봉으로 오른다. 건입동 초입에서 3킬로 정도 걸어와야 사라봉 입구가 나온다.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이다. 이상하게 이런 길이 막 힘들거나 싫지는 않다. 쉬지 않고 오르는 재미가 있다. 내 숨이 어디까지인가 속으로 재는 기분도 있다. 계단이 끝나면 나뭇잎 솔잎으로 덮인 부드러운 흙길이 나오고 또 오르막. 거기 끝나면 일몰을 볼 수 있는 정자가 있고 소나무 우거진 그늘 아래 의자가 있다. 한숨 내쉬고 땀을 닦는 곳이다.
그리곤 내리막길로 해서 별도봉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오솔길이 시작된다.
왼쪽으로 북쪽의 바다, 제주항, 그리고 봉우리 옆을 지나는 해안길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따가운 햇살일 텐데 따사로운 햇살로 느껴진다. 바다를 보며 천천히 걷는다. 평화롭다.
그리고 없어진 마을 곤을동을 지나 화북포구까지 계속 이어진 바닷길, 이제 어렵지 않은 평지이다.
삼양해수욕장을 기다린다. 검은 모레 해수욕장, 그 앞의 창넓은 카페에서 잠시 쉰 후, 맨발로 걸을 거다. 검은 모래는 그 나름 매력적이다. 깨끗하고 따뜻하고 좋다. 맨발로 걷는다. 좋구나. 중간스탬프를 찍고 조금 더 걸어가면 끝쪽에 마을 목욕탕이 있는 곳, 예전엔 마을 빨래터였던 것 같다. 발을 씻을 수 있게 편안한 자리로 잘 정돈되어 있다.
바닷가에 펼쳐진 검은 바위의 '닭모루'를 앞에 두고 그 억새와 바람이 가을 분위기를 심하게 돋운다. 여기도 관광객이 많다. 얼른 통과!
종점 1킬로 전이니 더 걸어야 한다. 19킬로미터는 확실히 길다. 산티아고의 30킬로 정도 되는 것 같다.
드디어 연북정, 여기 오면 느끼는 마음을 안다. 하여 시간이 많지 않으나 우리는 정자 위로 오른다. 딱 2분만 앉았다 가자.
귀양 온 사람들이 바다 너머 북쪽을 그리워하며 바라봤을 그 심정이 전염되는 거다. 아련함이다.
드디어 만세 동산 앞 올레센터. 종점 도장 찍고 오늘 길 완성! 오늘도 애썼다.
이제 네 코스 남았다. 내일도 19킬로란다. 내 좋아하는 길, 그 숲길 있는 곳. 박노해 시가 같이 있는 곳, 벌러진 동산, 곶자왈.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