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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산마메데/ 광치기 해변

by 순쌤

폰프리아~Sanmamede del camio, 28km(661.9km)-‘Paloma y lena’

약 118km 남았다고 한다. 아침 7시가 되기 전 짙은 안갯속에 출발한다.

마을에 들를 때마다 소똥 범벅이어서 제발 마을을 들르지 말고 건너뛰었음 하는 소똥포비아 수준. 자동차와 아스팔트 이후 날 너무 불편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그들의 냄새와 모습들이 힘들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도 보지 못하고 온통 신경이 그쪽으로만 쏠리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듯하다. 머릿속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것이 뭐가 대수야... 하는데, 마음이 전혀 따라주지 않는다. 급기야 ‘내가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지경까지 간다.


대체루트가 있는 길이 나온다. 하나는 강을 따라 여유 있게 가는 길이고 하나는 도로를 따라서 산과 언덕을 넘고 내려오는 가파른 길이라 한다. 6km 정도 덜 가기 위해 대체루트로 가지만 사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길이 깨끗한 걸 확인하고 안개에 싸인 풍경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을 깨닫는 순간에도 맘 한편으로는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 깔끔하고 아름다운 숙소에 앉아 정원을 보며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냄새에 민감해하고 있다.


레온지역과 갈리시아 지역이 확 다른 것을 알겠다. 다녀온 선생님이 ‘분위기 많이 다를 거예요.’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

갈리시아 이전의 레온 지역의 길은 파란 하늘과 흰 구름과 화창한 날씨와 넓은 포도밭과 들판, 도시 내음이 나는 지역이다. 거기에 반해 여기 갈리시아는 구름과 짙은 안개와 산맥과 우중충함과 해를 잘 볼 수 없는 날씨, 길마다 마을마다 소똥 범벅이고 사방이 그의 냄새로 진동하는 지역...

나는 아스팔트를 걸을 때 흙길을 원했다. 햇빛 속을 거닐 때 커다란 나무 그늘을 원했다. 그러나 이제 아스팔트가 차라리 나으며 그 싫은 돌길이 차라리 마른 길이어서 나으며, 햇빛 창연하여 똥들이 다 말라버린 길을 원한다.


내일부터는 10년 전에 걸었던 길이다. ‘사리아’. 여기를 얼마나 고대하며 왔는데, 아주 사소한 것에 온 우주를 잃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태생적으로 또는 후천적으로 너무도 싫은 것들은 의지로 어쩔 수 없음을 알다.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이해 못 한다는 반응은 폭력임을 알다. 내가 나를 돌아보고 싶은 시간, 이 마무리의 구간에 나는 나에게 완전 실망하고 있다. 그동안 너무 신나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했는데, 이제 나는 우울하고 위축되고 있다. 내일 가는 길 설명을 읽어보니 소똥이 질퍽이는 곳을 또 지난다 한다. 어째야 하노....

여기 알베르게 정원이 참 예쁘게 관리되고 있음을 느끼다. 입구에 ‘은퇴하고 싶으니, 알베르게 관심 있는 분 연락 바란다’고 쓰여 있다. 언니 생각났다. 이런 아름다운 숙소를 깨끗하게 관리해야 하고, 다양한 사람 대하는 숙박업이 얼마나 유지하기 힘든지 안다.


1코스 시흥리 정류장~광치기 해변 15.1km 총 27개 코스 437km


시작은 1-1 우도코스에서 했으니, 1코스가 마지막이다.

5년 전 10월에 이 친구와 함께 1코스를 걸었었다. 나는 은퇴한 해, 친구는 아직 현직에 있던 때, 제주의 가을을 보고 싶어 하는 친구를 데리고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새벽, 공항에 내리자마자 렌트한 차를 달려 시작점으로 와서 1코스를 다 걷고, 오후에 성산일출봉에 올라 감탄하며 일몰을 봤다. 검은 바다 위의 수많은 갈치잡이배의 불빛들을 기억한다.

다음날 따라비오름과 용눈이 오름을 오르고, 사려니숲길까지 걷고 가까스로 비행기에 발을 올리고 서울로 올라간 꽉 찬 일정.

친구는 다음날 입술이 부르터서 학교에 갔고 극기 훈련 다녀왔냐는 말을 듣고, 그때는 젊었나 봐, 이제는 그러지 말자, 그러지 못하지, 그럴 필요도 없지... 킥킥대며 추억을 소환하며 걷는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일정 맞다.


말미오름, 알오름은 여전히 억새 날리며 안녕하고, 종달리의 그 소박한 예쁜 카페도 여전히 운영 중이었으나, 성산일출봉을 앞에 둔 지점에 커다란 호텔이 생겨서 깜짝 놀랐다는.... 어떻게 거기에 그런 큰 숙소가 생길 수 있을까? 의구심도 가지며 사진 열심히 찍는다.

3시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제주올레 가서 완주인증받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걷고 나니 2시 조금 넘어서 도착... 한 시간에 5킬로 속도로 걸은 거지. 마지막이라고 막 달렸나 보다. 누군가 우리더러 치타 같다고 했었다.


제주 올레 센터에 가서 완주증을 받고 종도 울리며 기념 촬영하다. 우리의 얼굴은 한 잔 한 표정.

"아름다운 친구와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기록한다.

제주올레와 산티아고순례길이 협약을 맺고, 둘 다 완주한 사람들에게 공동인증서를 발급한단다.

집에 있는 순례길 인증서를 사진으로 받아 공동인증서를 발급받는다. 기쁨이 배가 된다. 기념품과 메달까지 덤으로 받으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있나...

제일 먼저 가족에게, 그리고 우리의 친구들에게 인증사진을 올린다. 나보다 더 나를 장하게 칭찬한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다 이루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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