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타운~ 테아나우~ 밀포드사운드
오늘은 일찍 시작, 후딱 정리하고 8시 반 출발이다.
킹스톤이란 마을에 있는 카페에 들러 빵과 롱블랙커피로 아침을 하다. 그리고 내 생일, 키위인형을 선물로 받다. 포근포근한 키위다. ㅋ.
남섬에서 가장 큰 호수 테아나우로 오다. 내일은 여기서 머물 게다.
작은 비가 흩날리기 시작한다. 호숫가에 차를 세우다. 차 세우는 곳이 다 풍경이며 다 쉴만한 물가이다. 커다란 슈퍼마켓에서 이런저런 식량을 사서 우리 냉장고와 간식통을 채우다. 든든하고.
일본인이 조그만 가게서 초밥을 만들어 팔고 있다. 김밥으로 한 줄 사서 컵라면과 함께 먹기로 한다. 물을 끓이고 김치를 내고 창문을 열어두고 호수가 보이는 카페를 만든다. 기가 막힌 멋, 맛이다. 이 캠퍼밴은 생각지도 못할 아름답고 소박하고 화려한 이야기를 남긴다. 비가 내려도 좋다. 차는 안전한 집이 되고 있다.
뒷문에 예쁜 집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교회다. 작고 품위 있는 건물에 놀이터도 있고 옆은 넓은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다. 앞에는 맑고 커다란 호수. 이런 교회에 다니면 신심이 절로 신실할 터.
마침 오늘 일요일이다. 잠시 들어갔다 오자... 근데 문을 잠가 놓았다. 지나가는 사람 기도하고 가면 참 좋을 텐데 왜 문을 잠가놨을까. 아쉬움. 우리 교회였음 열어놓았을 텐데.... 집에 들어와 커피도 한잔하고 출발한다. 밀포드사운드를 향해...
빗줄기가 세진다. 94번 국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라는데, 안개가 끼고 구름이 끼어 있다.
숲터널이 끝도 없이 펼쳐지더니 호머 터널 전, 그리고 터널을 나오고 계속 이어지는 도로에서, 사면 산에서 떨어져 내리는 엄청난 폭포의 장관을 보다. 비가 오지 않았으면 어떤 풍경일까. 흡!!! 동공이 커질 것 같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 하니 돌아오는 길을 기대해 보기로.
롯지로 들어온다. 비는 종일 그리고 밤새 내릴 것 같다. 텐트를 치게 된다면 참 갑갑하겠다만 아, 이 캠퍼밴, 이 안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된다. 방이 있고 불이 들어오고 히터가 들어오고 음식이 있고 물이 나온다. 사방의 창으로 빗소리가 두두둑 날것으로 떨어진다. 사면을 에워싼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배경으로 보인다. 이런 풍경이 어디 있을까. 내가 꿈꾸던, 아니 구체적으로 꿈꿔보지 못한 장면과 이 낯선 호화로움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비가 오는 오늘 하루는 내게 주어진 선물이다. 이 비 그치면 어떤 장관이 펼쳐질지 모른다.
음악을 틀어놓고 일단 커피 한 잔 끓여 마시고, 책을 읽다.
한국 시간 낮 2시, 여기 6시를 넘어가고 있다. 저녁은 공동 부엌에 가서 밥에 미역국을 끓여 먹자......
밀포드사운드 크루즈~디바이드에서 루트번트랙(키써미트트랙)~미러레이크~ 테아나우
10시 30분 크루즈를 예약을 해놓았다. 모든 예약은 그가 해놓은 것, 난 거저 여행 온 것이나 다름없다.
땡큐! 진심 인사 한번 해주고.
밤새 쏟아지던 비가 새벽부터 개는 것 같다. 빗소리가 두두두두 잦아드는 것 같았다. 날은 개고 절벽에서 내내 떨어지던 폭포와 같은 ‘눈물’이 역시 잦아든다. 크루즈를 타러 가는 길은 화창하다. 주차장에 막 나가는 차가 하나 있어 우리 거 끼어넣는다.
커다란 유람선을 타다. 난 '밀포드사운드'가 이렇게 크루즈를 타고 떠나는 것인 줄도 몰랐다.
여느 유람선처럼 '아름다운 해양의 경치를 보며 감탄하는 유람선 그런 거구나.' 처음엔 그리 알았다.
그러나...
피오르드지형인 밀포드사운드에서 테즈만 해와 만나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2시간 반 가량의 크루즈 일정은, 떨어지는 보웬폭포를 보면서 시작한 심상찮은 느낌이던 것이 돌아오는 순간부터는 아예 입이 좌악 벌어지게 만든다. 전날 내린 비의 영향으로 물살도 세고 여기저기 폭포가 쏟아져내린다. 무방비 상태... '밀포드사운드'가 '그냥 밀포드사운드'가 아니었다는... 사람들의 동공이 열리고 좁혀지고 입이 열리고 얼굴이 피어나고.... 그렇게 만드는 황홀경.
크루즈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도 배 위에서 물살을 가르고 있는 것 같이 부웅 뜬 비현실적인 느낌.
참으로 아름답다는 밀포드사운드 트레킹은 부지런한 적은 수의 예약자들만이 가능했고, 우리는 '다를 바 없이 아름답다'는 루트번트랙의 키써밋 트랙을 걷기로 한다.
어제 안개와 구름에 풍경을 감췄던 94번 국도로 달려간다. 숲길, 들길, 산길, 고개고개 절묘한 드라이브코스이다. 어제 보지 못했던 경관, 호머터널을 지나 바로 나타나는 장관들은 직접 봐야 하리.
그리고 디바이드. 트레킹을 시작하는 곳이다. 왕복 3시간 동안의 트래킹은 역시 날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다를 바 없을' 아름다운 길이었다는 것.
샛길도 없다. 길 잃을 염려도 없다. 잘 닦여진 길이다.
한 장 한 장의 컷으로 담을 수 없다. 다 파노라마로 찍어야 한다. 아니, 파노라마사진으로도 전체를 담지 못한다. 화산 지형에, 만년설에 밀림 같은 숲과 공기... 산에서 이끼를 통해 내려오는 물을 그냥 받아마신다. 100% 신뢰.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다. 누가 무엇 하나 버릴 수 있겠는가.
자연을 자연 그대로 보존해 주고, 자연은 사람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사람과 자연의 상생, 윈윈.
정상엔 3000미터급의 최고봉 크리스티나 산과 함께 마리안느 호수가 보이는 포인트가 있다.
사람들이 가장 자연스러운 당당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물론 입은 그냥 벌어진다.
흠, 뉴질랜드의 산과 길에 경의를!
내려오는 길도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워 설렘의 여운이 이어지다.
젊은 날의 산과 달리 이제 나에게 산은 이런 의미이다. 인간을 힘들게 하지 않는, 겁을 먹지 않아도 되는, 인간에게 편안한 휴식과 걷는 것에 대한 믿음을 주는 그런 산.
테아나우로 히치하이킹을 하는 프랑스인 부부를 태워준다. 운전을 얌전히, 신경 좀 쓰면서 테아나우까지 데려다준다. 고마워한다. 착한 일 한 개.
오늘은 휴식을 가질 겸 차에서 말고 방이란 곳에서 자 보자고 좋은 방을 하나 예약해 놨다.
먹을 것을 다 챙겨가서 부엌에서 요리해야 하고, 옷도 가져가야 하고... 차에 있는 것을 옮겨야 하기 때문에 더 불편한 것 같아 잠시 맘이 다운.
그러다 우아하고 깨끗한 '키친'에서 저녁 준비를 해서, 우리만의 '키친'에서 근사한 만찬을 하게 되니 다시 기분이 업. 가끔 이리 변덕을 끓이는 게 좀 미안하다.
오랜만에 진짜 침대에서 자니 몸과 등이 편안하다.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