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식과 인간성을 품는 곳
3부에서 다룬 내용을 활용해서 이야기를 확장시켜 봅시다. 만약 공공 공간의 접근성이 높아지고(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되고), 집단적 시간 관습(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말에 자유시간을 쓰는 것)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면, 우리는 '공간이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밀도가 높고 바쁘기까지 한 도시는 비인간성을 쉽게 허용한다는 겁니다. 심리학자 폴 키드웰은 밀도가 낮은 지역의 사람들이 낯선 사람을 더 잘 도와주는데, 그 이유가 "도시 생활의 부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도시인이 드러내는 방관자적 행태와 냉담함은 도시가 주는 과잉 자극(피로와 민감성을 증대시키는)과 활동 반경을 움츠러들게 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존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예컨대 버스의 빈 좌석과 같이 제한된 목표나 공유된 공동의 목표를 두고 경쟁이 일어날 경우, 이런 성향은 그 즉시 짜증과 갈등,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등장하죠. 바로 '경쟁'입니다. 저희 집 근처 공원에 있는 테이블 여섯 자리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 앉아 있습니다. 널찍하고 지붕까지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어떤 카페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주문을 더 해달라고 요청하죠. 반면 공원이나 거리에 있는 자리는 얼마나 오래 있든 눈치 볼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자리가 인기 있는지, 자리에 얼마나 머무는지가 왜 중요할까요? 자리는 적은데 사람은 많기 때문입니다. 식당과 카페, 도서관에 갔을 때를 떠올려봅시다. 전기 코드를 꽂을 수 있는 자리, 뷰가 좋은 자리, 의자가 편한 자리 등 제가 원하는 자리가 비어 있을 때는 별로 없었습니다. 사무실 밀집 지역의 점심시간에는 원하고 말고 할 자리도 없습니다. 아무 자리나 있기나 하면 다행입니다.
상황은 문화를 만듭니다. 별로 없는 (좋은) 자리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앉아야 하는 상황이 주어지면, 우리는 여러 전략을 사용하게 됩니다. 바로 옆 자리에서 호시탐탐 기다리기, 가게에 들어가면 원하는 자리에 짐을 먼저 두고 주문하러 가기, 일행 한 명이 먼저 자리 잡아놓기, (선점한 후에는) 자리를 비울 때 짐 놔두기...
지금이야 (다행히도) 예절 수준에서 논의할 만한 수준이긴 합니다. 하지만 자리라는 영역에 거래가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도 물론 자리를 쓰는 대가를 지불하죠. 똑같이 공부를 해도 도서관에서 하면 돈을 내지 않고 카페에서 하면 돈을 내니까요. 그렇다면 대신 자리를 잡아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행위는 어떨까요? 정치학자 마이클 센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돈으로 거래하는 행위가 어떤 경우에 어떤 가치를 훼손하는지 다룹니다. 저자가 소개해주는 사례들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입국 심사를 하고 비행기를 탈 때, 혹은 놀이공원에서 기구를 탈 때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패스트 트랙(Fast Track) 서비스’, 센트럴파크에서 셰익스피어 무료 야외공연을 열 때, 혹은 의회나 연방대법원 방청회를 열 때 대신 줄 서준 사람에게 수고비를 주는 ‘대리 줄서기 사업’, 스포츠 경기장에 있는 (일반 관람석과 분리된) 호화 특별 관람석... 미국의 사례들이지만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 있죠?
인파로 뒤덮이면 아무리 좋은 공간도 즐기기가 어렵습니다. 안 그래도 바쁘고 힘든데 잠시나마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를 즐기는 것마저 쉽지가 않은 거죠. 이런 스트레스가 사회적으로 확산될수록 사람들은 경쟁하고, 분리하고, 차단하고, 지불하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경쟁이 심해질수록 돈으로 해결하려는 문화 역시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자가 비어 있어서 재빨리 다가갔더니…
작가 윤광준은 "매일 보고 이용하는 전철이 친근하고 아름답게 다가와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중략) 전철이 아름답다면 하루의 즐거움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라고 말합니다. 매력이라는 단어가 공원, 상업가로, 광장, 각종 문화시설뿐만 아니라 지하철역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죠.
다만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겪어본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겁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도, 과연 지하철이 즐거운 곳이 될 수 있을까?'
<2-4. 조화>편에서 다뤘던 초고층 아파트도 같은 맥락입니다. 좋은 경관을 독점하기 위해 높은 건물을 짓고, 그보다 더 높은 건물을 짓고, 높이 관리 정책으로 인해 그보다 더 높이 지을 수 없을 때 다른 부지를 찾아 높은 건물을 짓는 행태가 반복됩니다. 그래서 각종 규제를 포함한 섬세한 도시계획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것이겠죠.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겁니다. 한국만 겪는 문제도 아닐 거고요. 인구를 분산시키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비관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존하는 사회를 희망한다면, 우리에게는 도시설계 전문가 얀 겔이 주장하는 "생동감 있고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도시"가 필요합니다. 그가 말하듯 "사람은 도시를 형성하고, 도시는 사람을 형성"하니까요. 좋은 삶과 인간성이라는 알이 부화할 수 있도록, 도시라는 둥지를 가꿔야 하지 않을까요?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곧 인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