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바꿀 수 있는 존재
바깥 공간을 찾아다닐 때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날씨입니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더군요. 추위가 풀릴 쯤에는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습니다. 종종 비도 오고요. 한국의 사계절을 돌이켜보면 바깥에서 기분 좋게 머무를 수 있는 날이 생각보다 별로 없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도 정해져 있으니, 며칠 안 되는 좋은 날씨와 이벤트(개화 등)를 누리려면 부지런히 시간을 내고 인파를 견뎌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날씨가 이상기후라는 이름을 달고 매번 우리에게 공포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의 더위는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죠. 이미 우리는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비가 이상하게 내리고, 따뜻해지는 추세에 있는 겨울이 종종 한파를 몰고 오게 될 거라는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대기과학자 조천호는 『파란하늘 빨간지구』에서 미세먼지, 온난화, 극한 기상현상 등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지구시스템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데, 여기서는 우리 주변에서 기후위기와 공간, 그리고 사람(특히 약자)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다음은 2009~2012년 서울에서 폭염이 사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서울대학교 김호 교수팀의 연구입니다.
폭염에 따른 사망 위험은 가난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8퍼센트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또 상대적으로 녹지 공간이 적은 곳에 사는 사람도 사망 위험이 18퍼센트 상승했다. 주변에 병원 수가 적은 지역에 사는 사람의 경우에도 폭염 사망 위험이 19퍼센트 높았다.
사회학자 조효제도 이 지점에 주목합니다. 그는 『탄소사회의 종말』에서 기후위기는 보편적인 문제이지만 "인간 사회의 조직 방식"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더 위협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노동자라는 범위로 좁혀서 생각해 봐도, 마땅한 휴게공간도 없이 실외에서 일하는 사람은 냉방이 잘 되는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폭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겠죠.
농민, 건설근로자, 택배 기사, 재래시장 상인 등 <3-3. 공간|약자>편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약자들은 아직도 많습니다. 앞에서 다뤘듯이 거주 조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기후위기는 쪽방 주민, 홀몸 노인, 환기 불량 주택 거주자, 저소득층, 기초생활수급자, 노숙인, 만성질환자, 심신쇠약자, 녹지 협소 지역과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역 주민들이 기본권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재난 회복력과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도시계획을 지방자치행정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통상적인 지방자치행정도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재구축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조처들이다. 대중교통과 이동 수단, 도로 시스템을 재조직한다. 가옥과 공공시설 및 도시 인프라를 생태 효율적으로 구성한다. 공공의료 제도를 확대한다. 도시 내의 공적 공간과 녹지공간을 확충한다. 도시 바람길 숲을 조성한다. 지역사회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시행한다. 기후감수성에 입각한 주민 참여 예산편성을 늘인다.
지하철역에 미세먼지 프리존을 따로 마련해 놓은 곳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지와 비와 더위와 추위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실내에서만 머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요? 흥미로운 관점 하나를 소개하자면, 작가 윤광준은 잘 만들어진 복합쇼핑시설이 활보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토록 걷고 싶었던 서울 도심에선 이젠 더 이상 걷지 못한다. 자동차의 소음과 매연, 그리고 혼잡함을 해치며 우아하게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은 이제 건물 안에 있다."
걷기 좋은 거대한 건물이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실내 공간을 더 잘 갖출 필요도 있죠. 다만 바람을 쐬고, 거리를 걷고, 벤치에 앉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한 번씩 생각해 봅시다.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해야만 계속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괜찮은 날씨를 모두가 누릴 수 있게 하려면 어떤 거리가 필요할까요? 가혹한 기상현상을 모두가 버틸 수 있게 하려면 어떤 도시가 필요할까요?
너무 추워서 도망치듯 들어온 전시관 로비입니다.
무척 더운 날이었지만 저 그늘 밑은 시원했습니다.
더우면 머물 수 없는 바깥 공간이 있는가 하면, 더울 때 찾게 되는 바깥 공간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