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과 느림의 안식처
누구나 자연이 펼쳐져 있는 풍경을 좋아할 겁니다. 멀리 산이 보이는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잔잔한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죠. 저는 호수가 있는 공원을 특히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왜 그 풍경을 좋아하나요?
진화생물학적 분석은 이렇습니다. 먼 과거에 푸른 잎사귀는 뿌리와 열매를, 푸른 강과 바다는 수중 생물을 뜻했다고요. 그렇게 인간의 DNA는 푸른색을 '생존'으로 기록했다는 거죠. 물론 우리는 자연 풍경을 진화생물학적으로 감상하지는 않습니다. 감정의 근원이 생존일지라도 '평안', '행복', '상쾌함' 같이 다채로운 감정을 느낀다는 게 중요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자연의 생물학적 효과(숲속을 거닐 때 인간의 호르몬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등)를 생각해 보면, 우리를 평안하게 해주는 건 결국 신경계의 반응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몸 안의 각종 수치가 개선되고 몸이 건강해진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을 곁에 두는 걸까요? 정신건강 전문가 에스더 M. 스턴버그는 『힐링 스페이스』에서 치유의 힘에 인문학적 관점을 담습니다.
시간을 내서 나뭇잎 위에서 반짝이는 햇빛을 보고 자연의 소리와 정적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중략) 그런 기억들이 우리의 감정을 붙잡게 내버려둬야 하고, 상념에 잠길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상념의 시간’을 좋아하는 저는 여기저기에 앉아보며 가만히 바라보고 싶은 장면을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공원을 좋아하나 봅니다. 이왕이면 규모가 큰 공원을 말이죠. 푸름이 넘치는 다양한 장소를 누릴 수 있거든요. 물론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감탄이 나오거나 위로가 되거나 영감을 주는 장소가 집 근처에 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하죠.
보통은 앞이 막히지 않은 곳에 앉지만, 기둥 앞에 앉아보기도 합니다.
저기에 앉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공원이 갖는 또 다른 힘은 '느림'입니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사람들의 빠른 걸음에 맞춰 제 걸음도 덩달아 빨라지더군요. 바로 옆에서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벤치에는 앉고 싶지가 않고요. 우리는 주변의 영향을 그대로 흡수하기 때문에, 조급한 사람들도, 위험한 자동차도 없는 공원은 훌륭한 안식처가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