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을 들여다보던 남편이 툭 던진 한마디. 아직 그의 눈에 불안은 없지만, 그늘이 느껴진 건 기분 탓일까?
"다 갚고 퇴사할 걸 그랬나?"
퇴사한 지 일주일도 안된 시점인 만큼 나도 모르게 머쓱해진다. 외벌이로 전향했으니 무책임하게 괜찮다고 할 수도 없고, 다시 돈 벌러 나가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은 아직 내키지 않기에 If 가정법의 애매한 표현을 선택한다. 갚고 퇴사했다면, (당신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이라고.
문득 퇴사를 결정하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본다. 그때였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걱정하지 마. 내가 같이 벌고 있잖아."
허세롭지만 제법 멋있게 말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정작 허세는 테이블 맞은 편의 남편이 부린다.
"괜찮아, 당신 꿈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돈은 포기할 수 있어."
이 사람. 가끔 멋져 보이는 부캐로 변신하곤 하는데 이날이 그날이었던 걸까?
그나저나 내게 꿈이 있다고?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이거다 싶은 꿈은 없다고 말한 기억뿐인걸.
"응? 나 꿈이 없어서 지금 백수처럼 앉아 있는 건데?"
그러자, 작정했다는 듯 한번 더 부캐가 등장한다.
"평일에 카페에 이렇게 앉아 있는 게 꿈이었잖아."
아 맞다. 평일 낮에 회사 말고 다른 곳에 앉아 있고 싶었다. 그게 집이어도 괜찮고, 집 앞 벤치라도 좋고, 카페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한가롭게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게 소소한 꿈이라면 꿈이었다.
"헐, 근데 내 꿈 때문에 만화카페 사장님이 평일 낮에 남의 카페에 와서 커피 마시고 있네. 우린 여러모로 마이너스 인생인 건가? 아님, 그냥 철이 없는 건가?"
"안 그래도 지금 갈 거였거든!"
남편이 드디어 발끈했다. 바로 본캐로 돌아왔군. 그렇지! 이것이 현실 남편이지.
남편은 그날 오전에 볼 일이 있어 오후부터 매장 문을 열 참이었다. 어차피 가야 할 시간이었기에 삐진 척 어설픈 발 연기를 하며 먼저 일어선다.
그나저나, 꿈이란 게 참 별거 아니구나.
그리고 잠시 후, 익숙한 얼굴과 옷차림의 한 소녀가 친구인 듯 보이는 또 다른 소녀와 함께 카페로 들어선다.
신원파악 완료.
창가 쪽에 자리 잡은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너 지금 투썸 왔지?"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내 자리에서 보이니까 알지. 그나저나 우리 서로 모른척하기다. 각자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주자고."
"오키요."
고개를 돌려 나를 알아보고는 다시 친구와 대화를 이어가는 딸.
여전히 귀여운 내 아이의 옆모습에 미소를 짓고는 괜한 헛기침을 한번 한 후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