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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Aug 04. 2022

남편이 퇴사 기념 파티를 열었다

40대 부부의 인생 2막 응원법

2년 6개월 전, 남편은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평소에 회사에 대한 불만도, 사내 인간관계에 대한 갈등도 없던 그였기에 처음에는 그저 치기 어린 '사십춘기의 가벼운 일탈' 정도로만 치부했었다.


며칠 후 그는 잠을 청하려 돌아누운 내 등 뒤에서 또 한 번 퇴사 이야기를 꺼냈다. 그를 향해 다시 돌아누웠다가 이건 진지한 문제라는 직감에 냉큼 일어나 앉아버리고는 이유부터 물었다.


"내 꿈이 원래 회사원은 아니었어. 내가 더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


그가 해보고 싶은 일은 만화카페를 운영하는 것이라 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소리가 이거였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곤 노곤했던 몸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잠이 달아났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납득하게 되었다. 수십 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시던 시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가게 운영에 대한 간접 경험이 풍부한 데다 대학교 때까지 일손을 도왔던 덕에 손님 응대, 서비스 마인드 등은 큰 각오 없이도 이미 Oriented 된 그였으니까.


하루 종일 서서 일할 수 있는 체력도 겸비했고, 친정 엄마가 야무지고 단정하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는 손놀림 역시 믿을 만한 구석이었다. 게다가 하나를 시작하면 쉽게 내동댕이 치지 않는 뚝심과 함부로 돈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점도 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


스며들 듯 그의 꿈을 응원하기로 했다.


돈으로 통하는 세상만사 대로 문제는 자본이었지만, 퇴직금을 받고 대출을 당기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부족한 부분은 내가 대출을 받아 투자하기로 했다.


다만 우리 의지대로 시작했다 해도, 그 결과는 함부로 예상할 수 없었다. 소위 열에 아홉은 죽어 나간다는 자영업의 길에 제 발로 들어섰으니 우리가 90%에 포함될지, 10%에 포함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설령 결과가 좋지 않아도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절망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남편을 믿고 응원하겠다는 나의 대답에는 동반자로서의 책임감도 서려 있으니, 남편 탓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망한다 해도 없어지는 건 까짓 거 돈이지, 우리 둘 사이의 믿음이 아니니까.


우리는 투자금을 날리더라도 인생에서 큰 경험 했다 치고 책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쪽박을 차게 될 경우 시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당신 소유의 집 한켠을 빌려 살아야겠다는 염치없는 각오도 했다. 진짜 길바닥에 나앉을 염려까지는 안 해도 되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최악을 생각해두니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 인생은 늘 최악보다는 나았다. 남편은 지금도 멀쩡히 만화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진지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남편은 "우리 파티할까?"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퇴사 축하 파티를 열자! 와~ 내가 다 설레네."


마치 난생처음 불꽃놀이를 본 것 같은 순수하면서도 신이 난 표정이었다.


그의 반응이 하도 신기해서 물었다.

"내가 퇴사하고 싶다는데 왜 당신이 신나 해?"


"당신이 하기 싫은 걸 이제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니까.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


그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뭘 하고 싶은지도 아직 정하지 않았는걸? 나도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 있어서 그만두는 거였으면 좋겠다."


새삼 나보다 앞서 꿈을 찾아 나선 남편이 부러워졌다. 그는 꿈도 일이 되니 더 이상 꿈꾸듯 살지는 않는다고, 매일이 현실이기에 짜증 나고 열나고 스트레스받는 일도 허다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직장 생활 시절에 비해서는 대체로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는 당장 퇴사 축하 파티를 했지만, 나의 퇴사 실현은 그로부터 1년 후에나 이루어졌다.

 

그리고 퇴사일을 전후로 전야제, 당일, 앙코르까지 2박 3일간 먹고 마시며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꿈이나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찾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나에게 1년이라는 시간을 주었으나 아직까지도 결정된 것은 없다.


퇴사일이 코 앞으로 다가오던 어느 날, 남편은 조급해하는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꼭 직업을 찾지는 않아도 되지 않아?"라며 운을 띄웠다.


글을 쓰고,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지금 그대로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했다.


이 행위들이 당장 돈과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도 아니지만, 삶의 형태는 달라도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저 단순하고 소소한 행복 아니겠냐며.


"내가 아는 당신은 전업주부가 되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똑 부러지게 잘 해낼 사람이야. 내 눈에는 그렇게 보여. 이 또한 훌륭한 역할이지. 아니, 직업이지. 그러니까 불안할 필요 없어. 충분하지는 않지만 욕심 없는 우리니까 아직은 먹고 살만하고!"


그새 내 얼굴이 활짝 펴지는 걸 느꼈는지, 보조개가 푹 파이도록 볼을 씰룩거리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만화카페 안 망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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