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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Jul 03. 2022

퇴사라 쓰고, 해방이라 읽는다

무모하나 무식하지 않은 퇴사 결정

"I fired myself."


김시내& 최수현 작가의 '퇴사합니다. 독립하려고요'에 표현된 대로 스스로를 멈추어 세웠다.


마침 중기계획에 대한 팀 회의를 진행한 직후였다. 팀장은 2023년부터 팀원 각자가 추진해야 할 region별 ToDo를 설명해주었다. 이미 퇴사를 결심하고 있던 터라,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만 2023년 2024년이라는 숫자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내가 없을 미래의 시간에 펼쳐질 ToDo를 응시하고 있는 이 순간이 공허했다.


회의가 끝난 후, 텅 빈 회의실에 나 홀로 앉아 있었다. 팀장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업무 관련으로 의논드릴 부분이 있다고 하니 그는 바로 회의실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퇴직 의사를 밝혔다. 팀장은 벌써 3번째인 만큼 이제는 만류하지 않겠다고 했다(퇴사 고민은 지난 1년간 계속되었으며 그 사이에 두 번이나 퇴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이었기 때문에 말릴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퇴사 이유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는 질문에도 "당신들 때문"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당신들 때문에 퇴사를 고려했고 회사가 싫어졌으며, 애정이 사그라든 건 맞지만, 퇴사 사유는 철저히 "나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소하고 하찮더라도 늘 동기를 갈망하며, 놀이터처럼 신나게 뛰어 놀 듯 일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혹은 워라밸이 기깔나게 좋아서 나의 하루하루가 즐겁고 평화롭거나, 독립적, 주체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한 환경에서 지속 가능한 유형이다.


직장 생활을 어떻게 20년이나 했냐고 반문한다면, 운이 좋게도 부분적으로나마 이런 부분들이 충족되는 곳에서 20년이나 일했을 뿐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러나 중견 사원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표를 붙여 성장의 한계를 정해놓고, 즉시 전력으로만 사용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동기 부여가 될리도, 신나게 뛰어놀기도 힘들었다. 밤낮없이 수시로 들어오는 업무 연락이나 디렉션은 워라밸을 보장해주기 만무했고, 우선 순위 없이 툭툭 던져지는 개선 과제는 관리자들의 생명연장을 위한 욕망의 산물로만 느껴졌다. 과제 수행을 못하는 직원은 집요하게 낙인 찍어 내쫓아버리고야 마는 그들의 관행은 이미 충분한 레퍼런스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에 충성하고, 관리자들을 충실히 따르는 직원들이 있는 이상, 관리자 "당신들"이 무조건 잘못되었고, 싫어서 나간다는 말은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더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것, 내게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나간다는 말이 더 적절한 듯 했다. 내 미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꽉 차 있으니, 불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말도 맞겠다.


당신들과 맞지 않는 것,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자명하나, 퇴사는 "내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지 당신들이 죽도록 미워서는 아닌 것이다.


면담 후, 이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해방된다는 느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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