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과 직함 모두 사라졌다

퇴사자의 숙명, 정체성을 싹 다 갈아엎어보자

by 소소라미

OOO님 또는 O차장님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졌다. 아마도 현재 내 이름을 불러주는 곳은 요가원이 유일할 듯싶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다면 "이름이 불릴 기회"는 희미해져 간다. 명함이나 그 안에 새겨진 회사 이름 또한 더 이상 나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명함의 경우 퇴사와 동시에 책상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는데, 잠시 집안에 굴러다니는 종이조각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여 미련 없이 버려버릴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나중에 할머니가 되었을 때, 손자나 손녀가 "할머니는 젊을 때 어떤 사람이었어요?"라고 묻는 다면 수줍은 듯 한 장 내어줄까?라는 공상과 함께 일단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그래그래, 누군가 나의 과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


명함통에는 유효기간(퇴사일)을 적어 놓았다.


"2022년 8월 16일부로 유효기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명함에 대한 예를 갖추고 나니, '와~ 이제는, 진짜 추억하기 위한 기념물에 지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새삼 서글픔이 밀려왔다. 물론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막상 하루아침에 무용을 실감하자 과거의 내 모습이 교차하며 씁쓸함이 밀려든 건 부정할 수 없다.


그깟 종이조각 하나 때문에 멘탈에 상처 입고 자존심을 구겨가며 겉으로는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척 가면을 쓰고 살았구나. 작은 종이조각에 크게 새겨진 간판을 한쪽 가슴에 꽂고 자랑스럽게 내보이기 위해(그렇다고 대단한 대기업도 아닌 주제에) 눈물, 콧물 훔치며 지냈구나. 그렇게 발버둥 쳐도 내가 곧 회사가 될 수는 없었는데, 알면서도 쉽게 당했다. 월급쟁이의 숙명이었다.


마지막으로 바라본 명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내 이름이 아닌, 회사 로고였다. 눈에 잘 띄는 위치에서 선명한 색으로 밝고 크게 빛나는 로고와 달리 내 이름은 저 아래에 흑백으로 새겨진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자리에.


'일신상의 사유'라는 사유를 달아 소심하게 날린 사직서 한 장으로 그 자리는 다른 이름으로 대체되어 버렸다(아직은 채용이 끝나지 않아 공석이라 들었으니 곧 대체될 것임).




고로 이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명함은 없다.


퇴사자가 월급의 부재와 함께 맞닥뜨려야 하는 첫 번째 숙명이다.


속박과 월급 노예의 삶을 이끌었던 명함에 대한 미련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어졌다는 건 조금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인트는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혹은 지금은 나를 어떻게 설명하고 싶은가?라는 쪽으로 옮겨갔다.

회사를 그만 두면 무엇을 하든, 무슨 명함을 내밀든, 나는 자유인입니다. 뮤지션이든, 아티스트든 카메라맨이든 뭐든 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 자칭입니다만, 그럼 뭐 어때?라고 배짱 있게 나가면 될 일입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만 있다면 자기 명함은 자기 뜻대로 만드는 것 아닌가요?
- 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자칭.이라는 표현에 꽂혔다. 오호라! 내 승인만 받으면 되는 거잖아.


무소속은 작은 종이 안에 갇혀 있던 내 이름을 어디에든 새길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다. 직장인 신분이었을 때는 "뭐든 될 수 있다"는 말이 당당함을 넘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막상 무소속이 된 후에는 나도 모르게 관념을 조금씩 벗어던지고 있다. 긍정적으로 뻔뻔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명함 하나로 설명하는 삶은 OO 회사, OO 부서, OO 담당자를 나와 동일시했다. 회사라는 우물 안에서 9to6로 일하는 내가 본질적인 나라고 규정해 버린 것이다. 취미 생활조차 자기 관리, 스트레스 해소, 실력 증진과 같은 목적 달성에 의의를 두었고 때로는 남이 하니 나도 하는 경쟁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역할은 "나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할 뿐이었다.




틀을 깨고 정체성 확대하기


직장인의 울타리를 벗어나니, 비로소 돈벌이로서의 일(업무) 외의 모든 일에도 나의 정체성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스트레칭이나 균형 잡는 동작을 선호하고 근력 운동은 선망하는 요기니이자, 완벽하진 못해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집안을 돌보는 주부이고 싶다. 방구석 블로거지만, 꿋꿋하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스토리 텔러가 되고자 한다.



누가 봐도 정신승리이자 자기만족이다. 맞다. 전혀 돈이 되지는 않는다. 돈벌이로서의 직업은 없다. 하지만 일은 있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설명서]에서 제현주 작가는 "직업이 타이틀이라면 일은 일상을 채우는 활동"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직업은 일의 범주 안에 놓이는 것이다. 따라서 일이 반드시 돈의 가치로 환산될 필요는 없다.


일을 업으로 치환해보면, 비록 "직"은 없어졌으나 "업"은 살아 있는 것 아닐까?.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나 유튜브만 보는 삶이 아니라면 누구나 업을 가지고 살아간다. 가정 주부라면 집안일이 업이고, 학생이라면 학업이 업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직"을 부여하기


그리하여 무직의 나를 무업의 나로 설명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리고 각각의 업에 나름의 직을 붙여봤다. 이나가키 에미코 식 접근 법이다.

가정 살림 최고운영자
매장 서비스 책임자(주말마다 남편 매장에서 근무 중)
글로 소통하는 스토리텔러(아직은 주니어니까 대리급?)
요가 강사 지망생(사이드 잡으로 도전해볼 요량)
중등/초등 맞춤 학습 코치(자녀 학습 지도)

앞으로 또 다른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타이틀을 붙여 보기로 했다. 미래에 새로운 직업이 생기더라도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여러 역할에 대한 직함을 지니고 살 계획이다. 뻔뻔하지만 그만한 배짱도 없이 제 발로 회사를 나온 건 아닐 테니까.


이전보다 나를 풍성하게 설명할 수 있어서일까? 한층 풍요로워진 기분이다. 마음이 부자면 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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