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퇴사하기 전까지 총 4곳의 회사에서 근무했고, 기간을 합하면 19년이 넘는다. 포인트는 공백 없이 연이어 소속되어 있었다는 부분이고, 이는 늘 직장 동료가 있었다는 말로 귀결된다.
한 달 근무일수를 20일이라고 가정하면 1년에 240일을 팀 동료들과 함께 보내는 셈이 되는데, 웬만한 절친보다 오랜 기간 마주치고 더 자주 대화하는 사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매일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밥을 먹는다는 것이 보통일인가? 때로는 가족보다도 더 빈번하게 테이블 앞에 둘러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미우나 고우나) 함께 밥을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누가 어느 식당을 좋아하고, 최애 메뉴는 무엇인지까지 꼼꼼하게 파악하게 된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 가도 마찬가지다. A는 라떼를 좋아하고 B는 얼죽아이며, C는 커피를 못 마신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뿐만 아니다. 결혼을 앞둔 A의 연애사부터 프러포즈 대작전에 결혼 준비를 둘러싼 미묘한 갈등까지 1박 2일 동안 이야기해도 모자랄 풀 스토리를 꿰고 있다. B의 경우 자주 이사하기 귀찮아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집을 샀더니 그새 두배 가까이 뛰었다고 한다. 어쩐지 한동안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니. C는 최근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 한다. 아직 젊으신 만큼 마음이 쓰인다.
보고 고난주간이 이어질 때면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으로, 이슈가 터질 때면 죽어도 같이 죽자는 전우애가 느껴진다. 일은 그지 같고 개똥 같아서 당장 때려치우고 싶어도 내가 속한 운명 공동체를 생각하면 출근할 맛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퇴사한 이후 꾸준히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관계는 얼마나 될까? 내 경험을 빌어보면 반의 반, 아니 한 두 명이라도 되면 다행이지 싶다. 4곳의 회사를 거치며 남은 사람을 다 합해도 10명이 겨우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니까. 업무나 회사 고민은 물론, 가족(특히 배우자나 아이들 이야기), 노후, 경제적인 문제에 이르는 개인적인 영역의 이야기들까지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사이었는데 '회사라는 공통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남은 자들의 우주와 떠나간 자의 우주로 갈라지며 견우와 직녀처럼 각자의 별을 향해 멀어진다.
희한하게도 잘 지내고 있냐는 연락 한통 하기가 망설여진다. 혹은 그리운 마음에 먼저 연락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 '하지 말 걸' 후회가 들기도 한다. 상대에게서 나와 조금은 다른 온도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 비즈니스 관계였구나.
연락을 주저했던 나도, 내 반응과 달랐던 동료도 모두 비즈니스 관계였던 것이다.
20대에 첫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는 친밀했던 동료들과 자주 연락하고 모임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각자 가정이 생기고 육아에 전념하게 되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관계 유지는 더 이상 중요한 가치에 자리하지 않았다. 그 시점이 언제였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서서히 스미는 계절의 변화처럼 자연스러웠다. 나 또한 그랬으니 섭섭한 마음도 없었다. 바쁘게 살아오다 소원해진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결심과 달리, 멀어진 옛 동료들에게는 선뜻 그런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라는 생각뿐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비즈니스 관계"의 정의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가 체험하고 느낀 비즈니스 관계는 그랬다.
새삼스럽게 안부가 궁금하지도 않은, 가끔 친구들과 술 한잔 할 때 맞장구치며 추억을 꺼내보는 정도의 딱 그만큼의 가치만 갖게 된다. 어찌 보면 당시에는 절친 이상으로 느껴질 만큼 돈독했던 관계들이 과거의 추억 저장소 한켠으로 옮겨가며 가끔 꺼내보는 '라떼' 스토리의 일부로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여러 번의 퇴사를 통해 관계의 시작과 끝의 경험이 쌓이면서 일로 만난 사이에 대한 시각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럴수록 어차피 먼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지속 가능성을 예단하는 대신, 머무는 동안 하루하루 기분 좋은 관계로 보내자는 마음이 더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어차피 비즈니스 관계인데"라고 단정 짓지도, 함께한 시간이 아깝다며 애쓰지도 않는다. 소중히 여기되 마음은 비워내는 것이다.
많이 기대지도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않은 상태로 건전하면서 유쾌한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아, 오랜 세월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구나, 세월이 흘러도 곁에 남을 동료가 아닌 친구"라는 감이 슬슬 오게 된다.
남을 사람은 남는 거다.
그리고 내 경우는 이 관계가 꽤 오래간다. 진한 우정처럼 해가 갈수록 무르익기도 한다.
물론 회사에 머무는 동안에는 우정으로 발전할 사람을 단정하기 힘들다. 진짜 비즈니스적으로 탁월한 사회성을 가진 사람들이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퇴사를 즈음해서 관계의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정을 주지 않으려 하거나, 남아 있는 멤버들에게 티 나게 충실해지는 타입이라면 이때 판가름이 난다. 혹은 깨달음은 퇴사 이후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 이들을 재정의하면 된다.
이번 역시 퇴직 시점이 되자 동료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갈렸다. 시간이 갈수록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과 오히려 거리를 두려는 사람으로. 오랜 직장생활을 해왔기에 매의 눈으로 분간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칙에 따른 촉으로 느껴버리고야 말았다.
진한 아쉬움을 지속적으로 표현한 동료들의 경우 고락을 나눈 시간이 더 많거나 업무적인 유대관계가 깊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다만 그 마음의 원천이 무엇이든 훗날까지 이어질지에는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고마웠고, 울고 웃었던 시간이 소중하며,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좋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한 번이라도 더 밥을 사고 차를 대접했다.
이윽고 마지막 날, 나를 좀 더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우정'의 바람을 담아 작은 선물을 전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악수를 청해 온 동료들의 손이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