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운영하는 매장(만화카페)의 주말 아르바이트생이 곧 그만둘 예정이지만 구인공고를 올려도 일하러 오겠다는 사람은 없단다. 최근 들어 심화된 요식업이나 서비스직 기피 현상을 현장에서 제대로 체감하는중이다.
'아, 주말엔 백수로 살기 힘들겠구나.'
한창 평화롭고 늘어지는 백수 생활에 맛 들이고 있던 터라, 아니 작정하고 당분간은 그렇게 살아보리라 결심했던 터라 조금 실망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어쩔 수 있겠는가? '땜빵'은 자영업자 사모님의 숙명인 것을.
한가한 평일의 매장과 달리 주말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뒹굴뒹굴 쉬러 오는 가족 단위 손님에 삼삼오오 보드게임을 하려는 학생들이 몰려온다. 일부러 차를 끌고 찾아오는 연인들도 있다. 대개는 바쁘다 못해 정신이 쏙 빠지고 영혼마저 탈탈탈 털린다(주말에라도 손님이 많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간헐적으로 주말 알바를 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가게를 오픈했을 무렵부터다. 다만 그때는 남편도 아르바이트생도 모두 일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 소위 오픈빨이라는 것이 먹히는 시점이었던 만큼 한 사람의 손이라도 아쉬울 때였다. 내 임무는 설거지나 식기 정리, 수저 세팅과 같은 보조 업무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을 대신하는 땜빵의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남편과 단둘이기에 R&R을 나누어서 하지 않으면 구멍이 나고 일이 꼬여버린다. 아무리 부부 간이라도, 아니 부부 사이라서 더 쉽게 짜증을 내고 토라진다(대부분은 남편이 짜증을 내고 내가 토라지는 역할이지만). 평화롭게 일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리고 집중해야 한다.
더욱이 2년 전과는 체력도 다르다. 그새 급 늙어버렸는지 운동을 해도 그때만큼 쌩쌩하지 않다(회사 스트레스로 불면과 피로가 오래 지속된 탓일까?). 근육과 뼈는 물론, 움직임이나 반응 속도도 빠릿빠릿하지 않다. 어색한 몸놀림 하나로 삐끗하기도 하고, 어딘가에 부딪친 멍자국이 쉽게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 사이흰머리도 부쩍 늘어난 느낌이다. 몸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노화중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래도 잃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인 건가? 2년간 조금씩 매장일을 도와온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서로 말하지 않아도 R&R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주문 결제 등 포스기를 이용한 카운터 일은 물론, 웬만한 음료 제조법은 다 외울 정도로 능숙해졌다. 그 와중에 음식 주문이 밀리면 주방 보조를 하기도 하고, 충전기 대여나 화장실 위치를 물어오는 손님에도 대응한다.
일명 노하우라는 것이 생긴 것 같다. '어떤 일을 오래 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이나 요령'이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알아서 몸이 움직인다. 머리보다 손이 더 빠르게 움직이는 듯 하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무수한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일의 순서를 정할 수 있게 되었다. 고민과 판단을 하기도 전에 즉각 튀어나오는 반응이다. 체력적인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고객에게도 만족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나도 모르게 익힌 것이다. 머리보다는 몸으로, 손으로, 그리고 발의 움직임을 통해 체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오너십'이라는 말로도 표현될 듯 하다. 하지만 주인 의식을 갖기 시작한 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퇴사가 계기였는지, 옆 매장 에어컨 물탱크가 터져서 종일 물을 퍼내던 날이었는지,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상시 출동 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의 변화 때문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워낙 꼼꼼히 짜인 계획이나 시간표는 기피하고 의식의 흐름에 따른 삶을 편안해하는 유형이기에,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무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물으면 그 시작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것이 중요한가, 혹은 즐기고 있는가만 문제 삼는다. 연예나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을 어느 순간부터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결혼은 함께 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서로 장난 삼아 이야기했던 것이 커져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후딱 치루어버렸다.
자, 이제 결론이다. 그래서 만화카페 주말 알바가 재미있냐고?
일단 종업원이 아닌 운영자의 마음으로 임하기에 수입을 바라보는 관점이 월급과는 다르다.
수시로 매출을 체크하면서 그날 목표를 설정하기도 하고 동기를 얻기도 한다. 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딱 그 돈만 쓰기로 하고 맥주를 마시러 간다. 실패하면 저렴한 짜장면을 시켜 먹고 집으로 향하면 그만이다. 가끔은 이러다 단세포 동물로 퇴화해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나지만 단순해져서 속은 편하다. 아메바도 제 속은 편하게 살겠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물론 절망할 때도 많지만 희망은 다음날 어김없이 리셋된다. 출근길에 오늘의 매출 목표를 조율하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퇴근길에 희망을 이루고 맥주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당연히 즐겁다.
손으로 만들어 완성하는 과정에도 재미를 느끼고 있다.
음료 주문이 여러 개가 들어와도 하나하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세로 임한다. 마음만은 크리에이터 혹은 장인의 정신으로 말이다. 음료 빛깔이나 모양이 예쁘게 나오거나 스무디 양이 적절하게 딱 떨어지면 절로 어깨춤이 나온다.
음식과 음료 주문이 한 번에 들어오는 경우에는 음식을 조리하는 도중에 수저를 세팅하고, 음료를 제조한다. 음식이 두 개 이상 들어올 때에도 순서를 정해 한꺼번에 만들어 본다. 내가 만든 감자튀김과 떡볶이가 어찌 이리 먹음직스러운지 감탄할 지경이다.
이 모든 결과는 돈가스를 만드는 사이 라면이 불어버리고 아이스크림이 녹아 절망한 시간들의 산물이다. 손님이 가지러 오기도 전에 휘핑크림이 다 무너지고, 파르페 과자가 부서져 속상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다만 거듭된 훈련(분명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어제의 나보다 조금씩 발전하다 보니 야무지게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2년 전, 쏟아지는 주문에 뇌가 정지되고 손님 앞에서 어버버 떨던 날들이 떠오른다. 나이 사십 줄에 생소하고 해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하는 것은 젊은 시절보다는 몇 곱절의 용기를 필요로 했다. 완연한 '어른'이라는 틀을 버리고, 서투르고 버벅대는 스스로를 용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처럼 실수 연발인 스스로가 한심해져서 더 화가 나고 멘탈이 무너졌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들은 수시로 그만두었고, 그때마다 알바 사모의 숙명을 피할 수만은 없었다. 매장에 나갈 때마다 '두려움을 잘게 쪼개라'는 문장을 새겼다. 아이스티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고, 결제라도 똑바로 하자는 각오로 임했다.
별거 아닌 아닌 일에 몹시도 비장했다. 하지만 별거 아닌 일들이 모여 별일이 되었다.
이제 그 알바 사모가 어엿한 운영자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는 중이다. 부서지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성장해버린 것이다. 이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으로 이어져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의 장막을 걷어주었다. 아마도 퇴사 결심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더욱이 상사의 생명연장을 위한 일도, 보여주기 식의 일을 위한 일도 아닌 '오롯이 내가 판단하고 책임지는 일'에 대한 자세도 배울 수 있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값진 경험이다.
서러움을 폭발시켰던 남편의 잔소리마저 이제는 용서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실수와 실패를 딛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