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말투의 투정 어린 목소리가 그림 수업반의 공기를 감싼다. 아직 2주 차 햇병아리 회원인 나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본다. 눈송이가 소복이 내려앉은 헤어스타일의 그녀는 이름 모를 꽃 스케치를 지웠다 그렸다는 반복하는 중이다.
"자기 몇 개월 됐지?"
옆자리에 앉은 짝꿍이 장미꽃 스케치에 연분홍 빛을 입히며 묻는다. 올림머리와 부드러운 스웨터가 장미꽃과 어우러져 더욱 고상해 보인다.
"응, 3개월 됐지."
"한창 그럴 때네. 하늘을 봐도 그려보고 싶고, 꽃을 봐도 그냥 지나치기 힘들지?"
"에이, 내가 보기엔 우리 회원님들 전부 한창 좋을 때야."
선생님의 한 마디에 모두가 까르르 웃는다. (이제 두 번 보았을 뿐이지만) 항상 베레모를 쓰고 멜빵바지를 둘러 입는 그녀는 360도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초로의 화가다. 모르긴 몰라도 족히 4~50년은 그림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수업 첫 날, 선생님은 꽃 두 송이가 그려진 프린트 한 장을 건네며 연필 스케치를 주문했다.
"수채화의 기본은 꽃이지. 얼마나 아름다워!"라는 감탄과 함께.
꽃 그림을 보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이걸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그려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꽃잎은 위부터 그려야 할지 아래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내가 꽃을 그려본 적이 있는지 기억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경험한 적이 있다면 손과 머리를 통해 소생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바람과 달리 나는 완전 초초 초짜였다. 미술 학원에서 정물이나 나무 그림은 몇 번 그려본 적은 있으나, 아득하고 먼 옛날이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분명한 현실은 연필을 쥐는 것조차 어색하다는 것이었다.
생각을 많이 하면 그림이 더 꼬일 것 같아서 그냥 보이고 느끼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렸다. 다행히 선생님은 잘 그렸다는 칭찬과 함께 혹시 천재냐며 엄지 척을 해주셨다. (아마 연필 쥐는 폼만 보고도 대번에 아셨지만 소심해 보이는 내 얼굴을 보고 방향을 잡으신 것이 아닐까 한다. 초짜니까 우쭈쭈 하면서 자신감을 북돋아줘야 할 회원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형편없는 그림 실력에 관한 것이 아니다. 불과 2주 만에 꽃과 나무, 햇살 그리고 그림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또 다른 나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 수강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유튜브로 꽃그림을 찾아 스케치 영상을 보며 1일 1 꽃 드로잉을 하고 있다. 귀신같은 알고리즘이 2주 만에 유튜브 홈 화면을 꽃으로 물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이끌려 영상을 보고 또 본다. 참고로 나는 꽃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다. 꽃 한송이 선물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한번도 서운한 감정을 느낀 적이 없으니까.
괜스레 꽃집 앞을 서성이고 있는 내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꽃을 향한 시선은 멈출 수가 없다. 조금 더 이른 계절에 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겨울을 향해가는 길목이라 코스모스들조차 내년을 기약하며 꽃잎을 떨구었는데 이제야 꽃을 찾아 헤매고 있다니.
문득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후드 집업을 걸쳐 입고 집을 나선다. 바람은 차갑지만 햇살은 따뜻한 계절감이 몸을 스친다. 하늘 마저 파랗고 높다. 턱을 살짝 들고 걸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하늘을 눈에 담고 싶다. 광장 앞 화단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해를 온전히 마주하는 윗쪽은 눈부시에 밝고 아랫쪽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입체감이 살아난다. 수변 공원을 따라 걷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 가지 사이로 햇살이 드리운다. 잎새 하나하나에 빛이 생긴다. 다채로운 생명력이 더해진다.
아름답구나!
이 모든 풍경을 그림에 담을 수 있다면 인생도 아름다워질 것 같다.
"요즘은 사는 게 너무 재미있어."
며칠 전 남편과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이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그날따라 딱 기분 좋을 만큼의맥주와 시원한 밤공기를 마셨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약간은 즉흥적이고 기분파라는 고유의 성향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확실한 것은 그동안 몰랐던 세상을 알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눈을 뜨며 '재미 리스트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재미'에 완전히 빠져 있다는 사실일 거다.
문득 일그러진 얼굴로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고 푸념하던 1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지난해 여름, 상사와 마찰을 겪은 후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치우고픈 충동에 잠못 드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내 멘탈의 연금술에서 다음 문장을 마주하며 내가 다른 세계로의 막연한 탈출만을 꿈꾸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도망치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한껏 발휘함으로써 만나게 될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변화가 필요한 것은 환경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 그만두자고 다짐했다.
그 즈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시선은 꼴 보기 싫은 상사가 아닌 나를 향하게 되었다. 일로부터 재미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불편한 진실도 마주했다.
"일주일만 사귀어줄래?"라고 매달리는 멜로망스의 "취중고백" 속 가사처럼 일에도 일주일만 정을 줘보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그래도 좋은 점, 그래도 해볼 만한 것들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나는 10번 찍어 넘어가는 부류는 아니었다. 연애 스타일도 그랬다. 좀 유들유들하면 좋으련만, 호불호에 대한 강단이 있는 편이었다.
결국,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하지 않겠다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흥미를 느끼거나 동경해 온 이른바 '재미 리스트'를 만들고 도전해갔다. "이거라도 해볼까?"가 아닌 "하고 싶다"였다. 두 손에 가득 담긴 시간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글쓰기를 계속하면서 요가와 독서 시간을 대폭 늘렸고, 자전거도 새로 배워 수시로 페달을 밟았다. 이윽고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리고 그 가치가 월급을 역전한 순간 회사를 나왔다. 퇴사 이후에는 영어와 그림을 추가했다(소소하게는 오락실에서 펌프도 즐긴다).
모든 시간들은 내 마음에 드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은 다양한 재미를 추가하고 시너지를 내며 연결점을 증폭시키는것임을알게 되었다.일도 마찬가지다. 재미를 동력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직업 선택의 기준도 명확해지고 있다.
자유롭게 색을 섞어가며 자연스럽고 다채롭게 표현하는 수채화와 닮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등 뒤로 바람을 느끼며 그림 수업에 가는 길, 그리고 다시 하늘과 나무를 담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눈에도 세상이 온통 수채화로 보인다. 큰일 났네.
한줄 요약 : 내가 그리는 그림은 긴 기린 그림도 안 긴 기린 그림도 아닌, 나를 닮은 수채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