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카페 사장님께, 그래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남편 속풀이 인터뷰

by 소소라미

남편은 만화카페를 차린 이후 나와 둘이 노는 날이 많아졌다. 주로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즐겼던 사람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니 놀 사람이 마땅치 않았을 수 있고, 마침 코로나 장기화로 지인들과의 만남이 조심스러워진 영향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매장에서는 알바사모로, 집에서는 술친구로 포지셔닝되었다. 나 역시 이래저래 상황들이 맞물리며 어울릴 사람이 마땅치 않았고 또 같이 놀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남편을 베스트 프렌드라 여기게 되었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친구가 된 거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 나이가 남편과 친구가 되기에 가장 좋은 때인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른들의 관계도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졌고, 마치 공동육아 형태로 여러 가족들이 다 함께 어울리면서 왁자지껄하게 보냈다. 아이 친구의 엄마들, 내 친구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물 구조의 관계들이 형성되었고, 그 안에서 위안과 활력을 얻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좀 더 자라 각자의 친구 혹은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내 초점은 다시 나의 인생으로 맞춰지기 시작했고, 그물 구조는 하나씩 사라졌다. 그리고 곧 질풍노도의 시기인 40대에 들어섰다. 남편 역시 본인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한 때는 40살부터였다. 우리는 서로의 사십춘기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진짜 친구가 되었다. 가끔은 서로 왜 넌 친구도 없냐고 놀려대곤 하지만.


남편이 친구라서 좋은 건,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눈치가 보이거나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 친해지기 시작할 때는 우리 아이들 또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개똥철학이나 엉터리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남편은 내가 예체능을 잘하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고 말해도 헛소리라 무시하지 않았고,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해도 쓸데없는 짓이라고 타박하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해도 수입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현실적인 걱정 먼저 하지 않았다.


대신 나의 인생을 존중한다고 말해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남편은 내가 매장에서 일하다 실수하면 잔소리를 해대고 집에서는 나무늘보처럼 한없이 늘어져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미완성형 인간이다.


그래도 내 인생을 가장 존중해 주는 사람이고, 나도 그의 인생을 존중하고 있다. 만화카페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반대하지 않은 건 남편의 인생과 꿈을 존중해주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남편은 2020년 봄에 회사를 그만두었고, 다시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회사가 싫은 것도 아니고 사람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지금도 직장 동료나 상사들은 이따금씩 매장으로 찾아온다. 술 한잔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매장 문을 일찍 닫고 회사 근처로 여러 번 놀러 가기도 했다.


단지 본인의 시간과 일을 스스로 컨트롤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고,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만화를 좋아했고 서비스업에 관심이 있었으며 스스로 계획하는 하루를 꿈꿨다. 나는 남편의 퇴사를 "회사 졸업"이라 일컫었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이 행복이라면 행복한 것 같아"


그치. 평화로운 동네를 구경 삼아 힐링하며 출근하고, 오픈 준비가 끝나면 아메리카노 한잔 하면서 사장 의자에 앉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캐주얼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SNS에 오픈 시간 변경 공지를 올리고는 한 시간 더 누워 있다가 출근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다. 일을 좀 일찍 마치고 싶은 날에는 문 앞에 안내문을 붙여 놓으면 된다. 확실히 본인 시간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

하지만 평일에는 혼자 운영하니 화장실도 제 때 못 가고, 갑자기 손님이 몰릴 때면 멘붕이 오기도 한다. 열심히 응대를 해도 주문한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는 불만의 소리를 듣기도 하며, 예고 없이 커피 머신이 고장 난 날이나 에어컨에서 물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손님들에게도 일일이 안내를 해야 한다. 마지막 손님이 나간 후에는 바닥에 제멋대로 흐트러진 보드게임 구성품을 다시 상자에 정리해 두고, 누군가가 소굴방 바닥에 흘려놓고 도망간 찐득한 음료를 닦아내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의 연속이며,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들이다. 주말에는 알바생들이 있지만 다 같이 실무자다. 알바생들이 자주 바뀌니 사장이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챙겨가며 일을 한다. 오픈과 마감은 오롯이 본인의 일이다.


그럼에도 그는 때론 화가 잔뜩 나게 되는 상황들 조차 행복이라 여겨지는 날들 안으로 쏙 넣어버린다.


물론 직장인 시절에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은 있었겠지. 상사에게 인정받고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기분이 들 때, 승진해서 축하 인사를 받을 때, 업무가 잘 추진되어서 성과가 좋을 때, 월급이 올랐을 때, 인센티브를 많이 받았을 때, 술 한잔 하며 전우애를 다지며 건배할 때 살아 있음을 느꼈을 거다.


하지만 이는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을 통해 얻는 행복의 머묾이 아닌, 누군가 인정을 해줘야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찰나였다. 순간의 행복들은 이슬처럼 사라졌다. 본인은 업무를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상사는 다시 해야 한다고 했고, 승진을 하면 그만큼 더 좋은 퍼포먼스를 요구했다. 출근한 자리에는 술 한잔으로 털어버린 돌덩이 같은 하루에 또 다른 돌덩이가 더해진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현재 남편은 스스로 인정하고 실패해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반쪽이 알바지만, 사장 남편과 함께 하다보니 지금 행복한 것 같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베스트 프렌드로서 내 친구의 인생 2막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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