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사대제 Jan 03.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03

제 1 장  출발 03

표지 사진 출처: 유현민, "자이툰 부대에 좋은 기억만 남을 것", <연합뉴스>, 2008-09-29 





제 1 장  출발 03



다음날 아침 자고 일어나 보니 거짓말처럼 모래폭풍이 그치고 하늘이 말끔히 개어 있었다. 


미군이 나누어준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우고 곧바로 아르빌로 이동할 채비를 갖추었다. 개인별로 지급된 10킬로그램이 넘는 방탄복에 전투 헬멧까지 착용하고 나니 이제 정말 전쟁터로 진입하는구나 하는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오전 10시 중대장으로부터 탑승 명령을 받은 현우는 의무ㆍ공병 중심의 병력 60명과 함께 활주로를 걸어 태극마크가 새겨진 공군 C-130 수송기에 올랐다. 수송기 후미에 탑승구가 닫히자 수송기 내부는 일순 어두컴컴해졌다. 약하게 폐쇄공포증이 느껴지면서 불안감이 배가되었다. 


잠시 후 진동과 함께 수송기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확실히 군 수송기는 민항기와는 달랐다. 이륙하자마자 몸이 옆으로 쏠릴 만큼 급속도로 상승해 비행고도를 확보했다. 내부도 어제 타고 온 여객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좁고 불편했다. 수송기가 정상 궤도에 오르자 기체가 안정되면서 기내에도 미등이 켜졌다.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시차에다 어젯밤 잠을 설쳐 노곤했던 현우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대로 눈을 감고 좌석 등받이에 기대 잠을 청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렸을까? 비몽사몽 선잠에 취해 있던 현우는 갑자기 기체가 심하게 요동치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르빌에 근접한 수송기가 착륙을 앞두고 혹시 있을지 모를 적의 대공포화를 피하기 위해 전술비행에 돌입한 것이다. 


수송기는 좌우로 기동하는 ‘롤링(rolling)’과 위아래로 기동하는 ‘피칭(pitching)’을 불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비행고도를 급격히 낮췄다. 기체가 추락하는 것처럼 툭툭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고도가 6,700미터에서 150미터까지 낮아졌다. 


위태로운 움직임에 탑승하고 있던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피칭과 롤링이 점점 더 심해졌다. 모두 훈련받은 군인들이었음에도 탑승자들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기내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던 수송기는 마침내 아르빌 하울러(Hawler) 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정말 아슬아슬한 착륙이었다. 


출처: 김연광, '[르포] 자이툰 부대가 주둔한 쿠르드의 땅을 가다', <월간조선 5월호>, 2005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새도 없이 병사들은 수송기에서 내리자마자 버스로 갈아타고 곧장 라쉬킨(Rashikin) 지역에 있는 자이툰 부대 주둔지로 향했다. 


공항에서 부대로 가는 내내 길 양옆으로 끝없이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막연히 이라크라 하기에 메마른 사막을 예상했건만 뜻밖에 무척 이채로운 풍광이었다. 드넓은 초원 사잇길로 20여분을 달리자 드디어 자이툰 부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가 진입로를 따라 엇갈려 놓여 있는 육중한 콘크리트 장애물을 지그재그로 피해 가며 부대 입구 검문소로 다가가자 부대 뒤편 흙을 쌓아 올려 만든 방벽에 태극기를 사이에 두고 영어로 ‘ZAY□TUN’이라 쓰인 커다란 부대 마크가 보였다. 버스가 검문소를 통과해 영내에 진입하자 자이툰 부대원들이 마중 나와 환호성을 울리고 박수를 치며 환영해 주었다.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최종 목적지, 자이툰 부대에 도착한 것이다. 


서울에서 이곳 아르빌까지 7,114킬로미터, 꼬박 1박 2일이 걸리는 기나긴 여정이었다.




<제 2 장  자이툰 부대 01에서 계속>

이전 02화 꾸리 앗 딘(Coree ad-Din) 0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