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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02.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02

제 1 장  출발 02

표지 사진 출처: 박종식, '파병연장 논란 속 자이툰 부대 환송식 열려', <한겨레신문>, 2006-12-06





제 1 장  출발 02



어처구니없게도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지겨움이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23세의 대한민국 청년 남현우는 또래의 다른 젊은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복무 중이었다. 대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입대한 현우는 강원도 양구의 첩첩산중 최전방 포대에 자대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포대는 6·25 전쟁 3대 격전 중 하나로 손꼽히는 펀치 볼 전투를 통해 아군이 확보한 고지 정상에 자리 잡고 있어 맑은 날이면 산비탈 아래로 휴전선 넘어 북한군 진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오지 중에 오지였다. 워낙 외진 산중 오지이다 보니 대대본부가 있는 산 아래까지 내려가는 데만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고 돌아 차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고립된 지역이었다. 


올려다보면 하늘, 내려다보면 사방이 오직 산뿐이었다. 이런 곳에서 1년여를 보냈으나 군 생활은 아직도 10개월이나 더 남아있었다. 일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시간은 너무도 느리게 흘러갔다.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에 두메산골에서 갑갑한 군대에 갇혀 지내자니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그럴 즈음 현우의 눈에 들어온 것이 ‘이라크 파병 자원자 모집’ 공고였다. 월동 보급품 수령 차 대대본부에 내려갔다가 우연히 본청 행정처 게시판에 붙어 있는 공고문을 보고 충동적으로 지원해 버렸다. 지원할 당시엔 목숨 걸고 전쟁터에 뛰어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보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은 발발한 지 이미 5년이 지나 지지부진한 상태였고 파병의 목적 또한 전투가 아닌 평화재건이어서 그다지 위험할 것 같지 않았다. 이미 수차례 파병이 이루어졌건만 모두 별 탈 없이 귀환하였고, 주둔지 역시 비전투 지역으로 분류되는 북부 아르빌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현우에게 이라크 파병은 참전이라기보다는 그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 보였다. 해외파병 기본교육 4주, 이라크 파병 6개월이면 그럭저럭 제대할 시기가 될 것이다. 게다가 귀국 후 24박 25일의 장기 휴가에다 한 달에 200만 원이 넘는 파병수당이 지급된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현우는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해 막상 지원해 놓고도 선발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더럭 선발이 되었다. 상사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초ㆍ중학교 시절 4년을 미국에서 보낸 현우는 영어에 능통했다. 아마도 이점이 심사과정에서 크게 보탬이 된 것 같았다.


2008년 새해 첫 달이 끝나갈 무렵, 전출 명령을 받은 병장 남현우는 부푼 가슴을 안고 해외파병 기본교육을 받기 위해 자대를 떠나 경기도 광주군 육군특전교육단으로 떠났다.




3월 초, 4주간의 해외 파병 기본교육을 마친 자이툰 부대 제8진은 성남 서울공항에서 민항기를 타고 쿠웨이트로 향했다. 군악대의 흥겨운 연주까지 곁들인  환송식을 마치고 이륙한 ○○항공 전세기는 10시간을 날아 쿠웨이트 북부 우다이리 복합 군사기지(Udairi Range Complex) 활주로에 안착했다.

 

출처: 조승진, '자이툰, 여기는 아르빌', <서울신문>, 2004-09-23 @ 국방부 제공


출발할 당시 서울은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아 무척 쌀쌀했는데, 쿠웨이트에 도착해 보니 3월 초순인데도 한국의 초여름만큼이나 기온이 높았다. 한국에서 입고 온 야상차림이 무척 덥게 느껴졌다. 게다가 모래바람이 어찌나 심한지 사방천지가 누런 안개에 갇힌 것처럼 뿌옇고 바람에 실려 온 모래 때문에 얼굴이 따끔거렸다. 확실히 한국과는 판이한 이역만리 타국이었다. 


도착 당일은 공항 인근의 미군기지 캠프 버지니아에서 하룻밤 숙영했다. 거센 모래폭풍 때문에 이라크 아르빌로 향하는 공군 수송기 운항이 취소되었기 때문이었다. 


파병 첫날밤, 현우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거리 비행 때문에 몸은 피곤했으나 앞으로 펼쳐질 임무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가뜩이나 싱숭생숭한데 숙소로 쓰이는 대형 야전 텐트 바깥으로 윙윙거리며 휘몰아치는 모래폭풍 소리마저 신경을 거슬렸다. 야전침대에 누워 밤새 몸을 뒤척이다 새벽녘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제 1 장  출발 0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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