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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04.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04

제 2 장  자이툰 부대 01

표지 사진 출처: 박성진, '자이툰 부대 주둔지, 아르빌', <경향신문>, 2004-08-03





제 2 장  자이툰 부대 01



처음 한 달간은 시간이 무척 빨리 흘러갔다. 


현우는 병장 계급장을 달고 이곳 아르빌에 왔건만 한동안 다시 신병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낯선 환경과 임무에 적응하느라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고 힘이 들었지만 그만큼 시간은 잘 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파병 생활이 한 달이 지나 두 달, 석 달째에 접어들자 또다시 지루함이 몰려들었다. 세계 어디에서건 군대 생활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더구나 이라크는 전쟁터였다. 전시에 병영 생활은 평시에 비해 훨씬 더 통제가 심했다. 맑은 날이면 저 멀리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아르빌 시타델(citadel)이 바라보일 만큼 도심이 가까웠으나 부대 바깥으로의 외출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아르빌 중심부의 고대 유적 시타델 / 출처: 나무위키  <아르빌>


자이툰 부대 영내는 대략 100만 평, 서울 여의도 절반 크기의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사격 훈련장이 있는 부대 뒤편 판축 형식으로 높다랗게 흙을 쌓아 올려 만든 방벽을 중심으로 커다란 조개껍데기 모양으로 조성된 부대는 철조망과 철책으로 이루어진 총연장 8킬로미터에 달하는 견고한 삼중 방어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외곽 철책선 중간중간 20개의 감시탑이 우뚝 솟아 있다. 


적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이라 했으나, 석 달 동안 적은 단 한 차례도 출몰하지 않았다. 이따금 느닷없이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한밤중에 자다가도 뛰어 일어나 방탄복에 군장까지 갖추고 방탄 대피호로 줄달음 쳐야 했지만 매번 훈련 상황임을 깨닫고 허탈해지곤 했다. 처음 몇 번은 정말 무슨 일이 났나 싶어 긴장했으나 나중엔 그것도 ‘아, 또 시작했군. 또 시작했어!’하는 심정이 드는 귀찮은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긴급 대응태세를 훈련하는 자이툰 부대 / 출처: 김귀근, 이귀원, '자이툰부대 위협 현실화..부대원 안전 비상', <연합뉴스>, 2005-05-30


강원도 전방에서 복무할 때는 직접 전투를 치르지는 않았어도 적이 누군지는 분명했다. 초소 감시 망원경을 통해 휴전선 너머 북한군 진지에 적병들의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적의 존재가 불분명했다. 


이라크 전쟁터에 파병 나와 있다지만 아르빌이 속한 쿠르디스탄(Kurdistan)은 이라크 영토라 하기엔 정체성이 모호한 지역이었다. 아랍계도 소수 거주하고 있기는 하지만 쿠르디스탄 주민의 대다수는 쿠르드족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이라크 국민이라고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생김새도 아랍계보다는 페르시아계에 더 가까웠고 언어도 아랍어가 아닌 민족 고유의 언어 쿠르드어를 사용했다. 


더구나 쿠르드족들은 1920년대부터 페슈메르가(Peshmerga: 쿠르드어로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이라는 뜻)라 불리는 민병대를 조직해 이라크 정부에 맞서 무장 독립투쟁을 벌여왔다. 2003년 4월 10일 바그다드가 미군에게 함락된 지 하루 뒤 아르빌에서는 사담 정권의 몰락을 축하하는 대규모 축제가 벌어졌었다고 하니 쿠르드족의 反사담, 反이라크 정서가 얼마나 강한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쿠르드족은 이라크 전쟁을 독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쿠르디스탄 자치구 깃발 / 출처: 위키백과 <쿠르디스탄>


그런 그들에게 이라크에 주둔하는 외국군은 적이 아니라 동지였다. 아르빌에서 한국군은 처음 진주할 때부터 점령군이 아닌 해방군으로서 환영받았다. 자이툰 부대도 지역 주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사단장 이하 모든 지휘관들은 부대 장병들에게 항시 자이툰 부대의 성패는 군사작전이 아닌 민사작전에 달려 있다며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피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언제부터인가 자이툰 부대원들 사이엔 한 병사가 기지를 발휘해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을 화합으로 바꿔놓은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파병 초기 자이툰 부대와 지역 주민들 사이엔 송수관을 둘러싼 갈등이 심각했다. 아르빌은 물 부족이 심한 지역이다. 건조기후대여서 강수량이 적은 데다 유일한 취수원인 자브 강(티그리스 강의 한 지류, 아르빌을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나눠져 강폭이 좁은 것은 小자브, 강폭이 넓은 것은 大자브라고 불린다.)마저 멀리 떨어져 있어 원체 물이 귀한 지역이다. 


그나마 오랜 전쟁과 가난 탓에 수도관 관리ㆍ보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 노후된 상태여서 인근 주민들은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이툰 부대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식수는 한국에서 쿠웨이트를 거쳐 공수해 온 생수로 그럭저럭 때울 수 있었으나 부대 유지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생활용수는 어떻게든 현지에서 충당해야만 했다. 


영내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자브 강에서부터 부대까지 연결되는 노천 송수관을 부설했는데, 이것 때문에 주민들과 지속적인 갈등이 빚어졌다. 물이 필요한 인근 주민들이 밤에 몰래 돌이나 망치 등으로 부대로 들어오는 송수관에 구멍을 뚫어 물을 받아가는 일이 빈번했다. 누수를 막기 위해 파손된 송수관을 교체해도 채 사나흘도 지나지 않아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조갈이 든 주민들의 물 도둑질은 그칠 줄 몰랐다.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송수관을 전 구간에 걸쳐 하루 종일 보초를 세울 수도 없고,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송수관을 파손하고 물을 빼내가려는 주민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비병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만 불러올 뿐이었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송수관 파손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자이툰 부대 사단장 이하 고위 지휘관들은 모두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재치 있는 한 병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 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냈다. 파이프라인 중간중간 파손이 잦은 지점마다 수도꼭지를 설치해 주민들이 송수관을 망가뜨리지 않고도 물을 받아갈 수 있도록 조처한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부대와 주민 양측을 모두 만족시킨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병사는 그 공로로 사단장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제 2 장  자이툰 부대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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