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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05.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05

제 2 장  자이툰 부대 02

표지 사진 출처: 자이툰 부대 군기 / 나무위키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





제 2 장  자이툰 부대 02



이처럼 자이툰 부대는 현지 주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심히 노력해 왔다. 실제로 자이툰 부대는 지난 4년간 지역 사회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자이툰 부대는 아르빌 지역의 치안유지라는 본연의 임무 외에 영내에 병원과 기술교육센터를 설치해 주민들에게 무료진료와 직업교육을 실시했으며 KOICA와 합동으로 학교, 보건소, 도서관, 도로와 수리시설 보수ㆍ신설 등 많은 사회 기반시설 건설사업을 진행했다. 부대 유지비용 이외에 이와 같은 지역 재건사업에 투입된 예산만 3천100여 억 원에 이른다. 한마디로 자이툰 부대는 아르빌 주민들에게 총을 들고 찾아온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다. 


같은 외국군이라도 아르빌에 주둔하는 미군과 한국군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확실히 다른 대접을 받았다. 고압적이고 거만한 전형적인 점령군 행태를 보이는 미군과는 달리 한국군은 지역 주민들에게 친근한 존재였다. 지난 4년간 자이툰 부대에 대한 적대 행위는 단 한 건도 벌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현우가 부대 안팎에서 가끔 대면하는 현지인들은 결코 한국군에게 경계심이나 적대감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래도 전쟁은 전쟁이었다. 격전지는 아니라 해도 아르빌에서도 2004년과 2005년에 두 차례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각각 110명과 60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하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항시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소지하고 근무하는 자이툰 부대 장병들의 긴장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실제 교전이 없다고 해도 영내엔 수시로 총성이 울려 퍼졌다. 부대 뒤편 사격 훈련장에서 특전사 대원들이 전술훈련을 하면서 쏘아대는 실탄 사격 소리에 부대는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때때로 야간 경계근무 중에 긴장한 초병들이 오인 사격을 하는 바람에 부대에 비상이 걸리는 수도 있었다. 부대를 둘러싼 철조망 주변엔 사전 경보용 조명 지뢰를 촘촘히 매설해 두었는데, 간혹 들짐승들이 이 조명 지뢰를 잘못 건드려 조명탄이 하늘로 솟아오르면 놀란 초병들이 적의 침투로 오인해 사격을 가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항시 생명의 위협을 겪으며 살았기 때문인지 제르바니(Jervani: 자이툰 부대에서 훈련받는 쿠르드족 경호부대 병사들)들은 특히 더 조심성이 없었다. 그들은 경계근무 중에 철조망 근처에서 그림자만 얼씬 거려도 아무 확인도 없이 무조건 총기를 난사하곤 했다. 


자이툰 부대원과 제르바니 병사 / 출처: 조승진, '尹국방, 자이툰 美작전 참여 안 해', <서울신문>, 2004-11-09


이런 상황에서 자이툰 부대원들은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지휘관들은 사병들의 긴장이 풀릴까 봐 수시로 군기 단속을 했다. 적은 보이지 않는데 늘 긴장을 유지해야 하니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테러의 위협보다 장병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이역의 혹독한 기후였다. 


3월 초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아르빌의 첫인상은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파병지가 이라크라 하기에 막연히 황량한 사막을 예상했건만 막상 아르빌에 도착해 보니 부대 주변은 온통 초록의 향연이었다. 드넓은 초지에 드문드문 이름 모를 들꽃이 화사하게 피어 아름다움을 더 했다. 열사의 땅, 중동이라 하기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기후는 영 딴판이었다. 위도가 높고 산악지역이라 고도도 높아 쿠웨이트보다는 확실히 덜 더웠으나 3월이라 하기엔 기온이 너무 높았다. 한겨울엔 이곳에도 눈이 내린다고 하는데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대엿새가 멀다 하고 서쪽에서 몰려오는 모래폭풍은 그 위세가 정말 대단했다. 도착 당일 쿠웨이트에서 한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지만 그 진수를 맛본 것은 역시 이곳 아르빌이었다. 일 년에 오십일 정도 부는 바람이라고 해서 아랍어로 50을 뜻하는 ‘캄신(Khamsin)’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모래폭풍은 삼사월 중에 절정에 달하는데, 일단 한 번 일었다 하면 그 기세가 실로 엄청나 거대한 쓰나미처럼 온 도시를 집어삼킬 듯 불어 닥쳤다. 그런 날이면 모래폭풍이 앞을 가려 보안용 고글과 방사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는 실외에 나설 수조차 없었다. 


캄신이 심해지면 모래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태양을 가리기 때문에 대낮인데도 초저녁처럼 껌껌해진다. 드물게 비가 오는 날이면 이 캄신 때문에 하늘에서 흙비가 떨어져 내리곤 했다. 봄마다 우리나라에 불어오는 황사는 캄신에 비하면 그야말로 약과였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복귀해 샤워를 하면 머리카락 사이에서 모래가 잔뜩 흘러나왔다.

 

도시를 덮치는 캄신 / 출처: Wikipedia, <Khamshin>


5월 초 숨이 막힐 것 같은 모래폭풍이 잦아들자 이번엔 혹독한 더위가 엄습해 왔다. 캄신이 부는 동안은 모래먼지가 햇볕을 가려 그다지 뜨겁지는 않았는데, 모래폭풍이 가시자 온 천하를 불살라 버릴 것 같은 태양이 맹위를 떨치면서 한낮 기온이 금방 40도를 넘어섰다. 그야말로 염천지옥이 따로 없었다. 더위를 이겨내는 것은 고사하고 가만히 앉아 견뎌내는 것조차 힘에 겨울 지경이었다.




<제 2 장  자이툰 부대 0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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