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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06.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06

제 2 장  자이툰 부대 03

표지 사진 출처: 자이툰 부대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병사 / 이영섭, '자이툰 부대 내년 말 완전 철군, 당정합의, <연합뉴스>, 2006-11-30





제 2 장  자이툰 부대 03



그런데 현우가 아르빌에 와서 느끼는 가장 큰 애로는 이도저도 아닌 소외감이었다. 


자이툰 사단은 혼성 부대답게 부대원들 간에 응집력이 떨어졌다. 여러 병과와 소속이 각기 다른 병사들이 뒤섞여 있다 보니 부대원들은 같은 사단 마크를 달고 있어도 같은 부대 소속이라는 동료 의식이 거의 없었다. 전투병과 소속의 병사들과 지원병과 소속의 병사들은 파병의 목적 자체가 달라 보였다. 


부대 경비가 주 임무인 전투병과의 특전사, 해병대, 그리고 소수의 기갑부대 병사들은 이라크 파병을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한 해외전지훈련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전투병과의 주축을 이루는 특전사 대원들은 자신들의 전사(戰士)다움을 과시할 수 있는 전장에 와있다는 게 만족스러워 보였다. 사흘이 멀다 하고 부대 뒤편 사격 훈련장에서는 특전사 대원들이 전술훈련을 하면서 쏘아대는 실탄 사격 소리가 부대 내에 요란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자이툰 부대 특전사 대원들의 전술 훈련 / 출처: 나무위키,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


부대 정문 경비를 담당하는 해병대 병사들은 특전사 대원들에게 묘한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다. 해병대 병사들은 그들만의 단합을 과시하기 위해 부대 영내에서도 항상 똘똘 뭉쳐 단체로 돌아다녔다. 


재건 업무를 담당하는 의무대와 공병대 대원들은 자신들이 평화ㆍ재건 활동의 주축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중에서도 군의관들과 간호장교들은 의무직종 특유의 엘리트 의식이 머리끝까지 차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었다. 더구나 그들 대부분이 장교여서 일반 사병들은 더욱더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현우는 의료지원단이 운영하는 현지인들을 위한 무료 병원에 통역병으로 배치되었다. 


현우의 주요 임무는 병원을 찾아오는 현지인 환자들과 의료진들 간에 통역을 담당하는 것이었다. 현지인 환자들이 아랍어나 쿠르드어로 증세를 이야기하면 현지인 통역이 영어로 말을 전하고 현우가 다시 한국군 의료진에게 한국어로 통역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한 다리 건너 통역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지만 현지의 언어장벽을 뛰어넘으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통역 과정에서 대동소이한 대화를 반복하다 보니 석 달쯤 지나자 현우는 간단한 아랍어 몇 마디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통역이 주된 임무이기는 했지만 현우는 병원에서 오더리(orderly), 딜리버리(delivery) 등 자질구레한 병원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비록 병원 내에서 군복을 입고 근무하기는 하지만 현우의 역할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잡역부에 가까웠다. 


출처: 자이툰 병원, <동아닷컴>, 2005-04-16


병원 업무 이외에도 교대로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들고 부대 외곽 경비 초소에서 야간 경계 근무를 섰지만 해외 파병용사의 무용담으론 턱도 없는 수준의 경험이었다. 오히려 긴장감은 강원도 전방에서 경계 근무를 설 때가 더 했다. 


자이툰 부대원으로 근무하다 보면 현우는 자신이 해외에 파병된 군인이 아니라 분쟁지역에 봉사활동을 나온 NGO 직원 같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었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지만 의무대 소속이 아니었고 육군 보병 출신이지만 전투병과 소속도 아닌 애매한 위치였다. 현우는 이도저도 아닌 그저 대한민국 자이툰 부대원일 뿐이었다. 그러자니 소외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제 3 장  아르빌에서 바그다드로 01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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