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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사대제 Jan 08. 2024

꾸리 앗 딘(Coree ad-Din) 07

제 3 장  아르빌에서 바그다드로 01

표지 사진 출처: 주인탁, '상황 발생 가능성 염두에 두고 긴장감 속 작전 수행', <국방일보>, 2004-07-20





제 3 장  아르빌에서 바그다드로 01



그날이 그날 같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현우에게 변화가 찾아온 것은 파병 기간이 이제 막 절반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6월이 되자 6개월의 임기를 마친 자이툰 부대 7진이 귀국길에 오르고 후속 9진이 아르빌에 도착했다. 부대를 떠나가는 7진을 환송하면서 현우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워졌다. 작년 겨울 처음 이라크 파병을 결심했을 땐 이곳에서마저도 시간이 안 가 고생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군대에서 흔히 쓰는 말로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돌아간다고 했건만 시간은 더디 흘러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더위에 지쳐 입맛을 잃은 현우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식당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물었다. 이라크에 와서 들인 습관이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판에 박은 것 같은 지루한 일상 속에서 흡연 이외엔 달리 위안을 얻을 만한 거리가 없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지 두어 달 되었는데 이제 제법 담배 맛이 구수했다. 특히 식사 후에 담배 한 대는 맛이 각별했다. 


입에서 내뿜은 담배 연기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 한 대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당번병이 다가와 중대장의 호출을 알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현우는 피우던 담배를 서둘러 눌러 끄고 곧바로 당번병을 따라 중대장실로 향했다. 


중대장실에 들어서니 중대장인 박 대위는 현우에게 보름 일정의 바그다드(Baghdad) 출장을 명했다.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의 경비를 담당하기 위해 교체 투입되는 해병대 1개 소대 병력을 따라 통역병으로 바그다드에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현우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바그다드 출장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질려있던 현우에게 얼마간 여유를 갖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여겨졌다. 현우는 곧바로 숙소로 복귀해 필요한 군장을 꾸려 해병대 일행에 합류했다. 


해병 소대를 인솔하는 소대장 염승진 중위는 해병이 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같아 보였다. 뒷머리를 아예 밀다시피 한 짧은 해병대 헤어스타일에 각 잡힌 몸가짐, 딱딱하면서도 짧게 끊어 말하는 군대식 말투 등 해병 장교의 전형 같은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가까이 지내기 부담스러운 유형이었다. 


그래도 현우는 통역병이었기에 좋든 싫든 당분간 염 중위와 붙어 다녀야 할 팔자였다. 그 한 가지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기대로 부푼 바그다드행이었다. 이라크에 와서 수도 바그다드를 보고 가지 않으면 아쉬움이 클 것 같았다. 바그다드에 다녀오면 귀국 후 남다른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기는 셈이었다. 더구나 바그다드는 그 유명한 천일야화의 도시 아닌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현우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은 꿈에도 모른 채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바그다드로 향했다.

 



현우 일행은 일단 자이툰 부대를 떠나 아르빌에서 남쪽으로 70킬로미터 떨어진 키르쿠크(Kirkuk)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일행이 탑승하고 있는 버스를 앞뒤에서 국산 K-200 장갑차 두 대가 호위해 주었다. 


키르쿠크에서 미군 부대에 들러 그곳에 주둔하는 미군 일부와 합류해 바그다드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키르쿠크에서 바그다드까지는 200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지만 도로 사정이 안 좋아 네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바그다드 인근에선 반군의 공격이 잦아 안전을 위해 한밤중에 이동한다고 했다. 출발까지는 반나절 정도의 여유가 있었으므로 저녁 식사 후 배정된 미군 막사에서 수면을 취했다. 어차피 밤 한두 시경에는 출발을 위해 일어나야 했기에 해병대 병사들 대다수는 군화도 벗지 않은 채 야전 침상에 누워 선잠을 잤다. 현우도 야전 침상에 누워 깜박 잠이 들었다가 출발 준비 신호를 듣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다.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 @ 국방부 제공


막사 밖으로 나와 미군들과 함께 소대 단위로 대오를 정렬해 대기하고 있자 미군이 병력 수송에 이용한다는 장갑 버스 라이노(Rhino)가 줄지어 들어와 병사들을 싣기 시작했다. 코뿔소라는 명칭에 걸맞게 라이노는 외벽이 두꺼운 장갑판에 싸여 있어 웬만큼 집중사격을 받아도 끄떡없다고 했다. 평상시엔 유리 창문에 장갑판을 차양처럼 들어 올려놓았다가 위험지역을 통과할 때 다시 내리 덮으면 마치 탱크나 장갑차처럼 탑승 인원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탄 성능을 갖춘 호송 버스였다.




<제 3 장  아르빌에서 바그다드로 0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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