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구사일생 04
표지 사진 출처: 바그다드 시내 전경 / 현지에서 본인이 직접 촬영
눈을 떠보니 현우는 대사관 의무실 침대에 수액을 꽂은 채 누워 있었다. 현우가 깨어난 것을 눈치챈 강 중위가 침대로 다가와 물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나요? 괜찮아요?”
정신을 잃고 오래 누워있었던 탓인지 약간의 두통이 느껴져 양미간을 찌푸리며 현우가 대답했다.
“머리가 좀 아프네요.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나요?”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하고는 강 중위가 대답했다.
“반나절이 조금 지났네요. 무사해서 천만다행입니다.”
“염 중위님은요? 무사하신가요?”
고갯짓으로 차양이 둘러쳐진 병상 쪽을 가리키며 강 중위가 말했다.
“몸은 무사한데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증세가 심각해요. 더 이상 이라크 복무는 무리예요. 조만간 본국으로 후송 조치될 겁니다.”
“남 병장도 아직 무리하면 안 돼요. 상태를 보아야 하니 하룻밤 더 이곳에서 주무세요. 내일 아침까지 지켜보고 이상 없으면 사병 숙소로 복귀 조치하겠습니다.”
그날 밤이었다. 강 중위도 숙소로 돌아가고 의무실엔 현우와 염 중위 단 둘 뿐이었다. 정신을 잃고 오래 누워 있었던 탓인지 현우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아 병상에서 몸을 뒤척이고 있는데,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달빛처럼 몰래 염 중위가 현우의 병상으로 다가와 있었다. 뜻밖에 염 중위의 모습을 발견한 현우는 소스라치게 놀라 물었다.
“염 중위님 괜찮으십니까?”
병상 곁에 서서 말없이 현우를 내려다보던 염 중위는 떨리는 목소리로 짧게 한마디 말을 던졌다.
“남 병장, 오늘 우리는 밖에서 아무 일도 겪지 않았다. 알겠나?”
“……”
염 중위는 현우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말없이 자기 병상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염 중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강 중위의 허락을 받고 의무실을 나와 사병 숙소로 복귀한 현우는 그 이후로 다시는 염 중위를 보지 못했다.
대사관 무관 황 중령은 해병대 병사들에게 염 중위가 총격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어 부득이하게 후송 조치되었노라고 공식 발표했다. 물론 현우에게도 함구령이 내려졌다. 유난히도 군기를 강조하던 해병 장교 염 중위는 부대원들 사이에 임지에 부임하자마자 불의의 총상을 입고 후송된 운 없는 지휘관으로 소문이 났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우만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평소 염 중위가 주위에 보여준 모습은 그의 본모습이 아니었다. 지나칠 정도로 군인다움을 내세우고 군기를 강조한 것은 사실 자신의 소심함을 감추기 위한 자기기만이자 자기방어기제였음을 현우는 간파했다. 염 중위 역시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지는 여린 마음의 애송이 젊은이일 뿐이었다. 그걸 감추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과 남을 속이고 스스로를 채찍질해 온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 또한 남자다움과 용기를 강요하는 군대문화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소문에 의하면 염 중위의 부친은 베트남 전쟁에서 무훈을 세운 해병 장교 출신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는 부친의 강요에 따라 원치 않는 군인의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현우는 염 중위의 진면목을 알아버린 이후에도 그를 경멸하거나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염 중위가 후송되고 이틀이 더 지나자 현우도 백 중위의 소대원들과 함께 아르빌로 복귀했다. 바그다드를 출발한 현우 일행은 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 아르빌로 돌아왔다. 같은 일정을 반복하려니 지루할 만도 했으나 사지(死地)를 벗어난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1박 2일의 일정을 소화해 냈다. 다시는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바그다드였지만 그곳은 현우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을 남긴 장소가 될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제 8 장 꾸리 앗 딘 01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