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꾸리 앗 딘 01
표지 사진 출처: 자이툰 부대가 아르빌에 건설해 기증한 자이툰 도서관 / 유현민, "자이툰 부대에 좋은 기억만 남을 것", <연합뉴스>, 2008-09-29
아르빌로 복귀한 이후 현우의 근무태도와 마음가짐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현우가 이라크 파견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지루하지 않게 남은 군복무 기간을 때우기 위함이었다. 바그다드에 다녀오기 이전엔 전쟁이야 어떻게 흘러가건 말건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어영부영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며 지냈다.
하지만 바그다드에서의 강렬한 체험은 현우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먼저 현우는 전쟁이 뭔지도 모르면서 전쟁터에 뛰어든 자신의 경솔함부터 후회했다. 염 중위만큼은 아니어도 그날 이후 현우도 남몰래 PTSD에 시달렸다. 식욕을 잃어버려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억지로 뭔가를 먹으면 바로 배탈, 설사에 시달려야만 했다. 불면증이 생겨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이런 증세는 한 달가량이 지나서야 겨우 가라앉기 시작했다.
현우가 바그다드에서 직접 목격한 전쟁의 실상은 그만큼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이라크 파견 지원을 후회해 본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바그다드와 같은 전방이 아닌 아르빌 같은 후방 비전투지역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명분 없는 전쟁에서 손에 피를 묻히는 전투 임무에 투입되었다면 생각만 해도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비록 군인의 신분으로 전쟁터에 왔지만 현우가 맡은 일은 살상이 아니라 구호였다. 바그다드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현우는 아르빌 근무가 천운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모든 불평불만도 사라졌다. 오직 살아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복도 아껴야 한다. 현우는 하늘이 내려준 복을 아끼고 아껴 남은 복무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이곳에 온 상태 그대로 온전히 귀국하는 것이 지상목표였다. 현우는 아르빌 복귀 이후에 PTSD를 이겨내기 위해 병원 일에 전념하려고 노력했다. 일에 몰두하면 할수록 잡념이 사라지고 시간도 빨리 지나갔다.
더구나 세계 어디서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어서 현우가 현지인 환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정성을 쏟자 그들도 현우를 한 층 더 친근하게 대하고 호감을 표시했다. 그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와 눈빛에서 그들의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현지인들의 감사와 정겨운 교감은 그대로 현우에게는 보람이었고 PTSD로부터 회복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럴수록 현우는 맡은 임무에 더욱더 열심히 임했다. 주어진 일 이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려고 노력했다. 병원 일 이외에도 이전에는 심드렁하기만 했던 부대 바깥에서 벌어지는 각종 대민봉사 업무에도 앞장서 지원했고 현장에 나가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우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바그다드에서 만났던 이라크인 통역 하이다에게 했던 대답, 이라크를 돕기 위해 이곳에 왔노라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현우의 근무태도가 바뀌자 주변의 평가도 달라졌다. 점차 현우는 부대 내의 상관과 동료들로부터 모범 사병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자이툰 부대에 고용돼 부대 내에서 일하는 쿠르드족들은 현우에게 아랍어로 ‘꾸리 앗 딘(Coree ad-Din: 선하고 정의로운 한국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현우는 Sgt. Nam(남 병장)이라는 공식 호칭보다 꾸리 앗 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꾸리 앗 딘, 남현우는 어느새 자이툰 부대 내에서 현지 고용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인이 되었다.
<제 8 장 꾸리 앗 딘 0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