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에서 2

"한 번 난 상처는 사라질 수 없다. 하지만 새 살이 밖으로 드러났다."

by 양연화


대학을 졸업하고 몇 해 뒤, 나와 해주는 부모님의 집을 떠나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곳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정남향으로 햇볕이 잘 들었고 화분을 놓아둔 베란다에서는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의 냄새가 실내를 감쌌다. 해주는 주방 한 켠에 놓인 작은 탁자에서 그림을 그리고 나는 퇴근 후 거실의 조용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반면 부모님 댁은 아직 우리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린 두 딸이 크고 떠나간 그 집에는 자라온 날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거실 한 켠 연필로 자라나는 키를 표시해 둔 자국. 언젠가 아버지한테 혼나고 방문 뒤에서 눈물 훔친 날, 삐뚤삐뚤하게 벽지에 써놓은 ‘아빠 미워’라는 글씨. 벽지가 누렇게 바랜 그 집을 여전히 어머니는 매만지며 살고 계셨다. 우리는 달에 한 번 정도 함께 본가에 내려갔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방은 창고로 쓰이거나 어머니의 새로운 취미 공간으로 바뀌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는 한 해가 다르게 가지를 뻗었고 아버지는 거실 창으로 그 나무를 바라보며 신문을 읽곤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찾아갔다. 문을 열어 주신 어머니는 연락 없이 찾아온 손님을 반가운 얼굴로 맞았다. 식탁 위에는 따끈한 녹차가 놓였지만 나는 앞으로 할 이야기들의 무게로 차를 마실 수 없었다. 나는 내 두 손을 꼬옥 쥐며 입을 열었다.
“엄마 혹시 예전에 나랑 해주랑 같이 놀던 애 기억나? 이름이 호준이.”

어머니가 잠시 생각에 잠기듯 고개를 기울였다.
“아, 그 집. 엄마도 가끔 생각났어. 왜?”

나는 숨을 들이켰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자주 와서 놀고는 했잖아. 근데 어느 날부터 안 오기 시작했지? 그때 그 애가 해주한테 아주 나쁜 짓을 했어. 아주 오래전 일이지. 해주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난 그걸 봤어.”

어머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봤는데 아무 말도 못 했어. 너무 무서웠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냥 덮었어.”

그 순간 해주에 대한 미안함이 차올랐다. 그리고 낳아주시고 당신의 인생을 바쳐서 우리를 키워주신 어머니를 향한 죄송함이 휘몰아쳤다. 사랑으로 키운 두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쉬이 말할 수 없었다.
“해주는 그 일로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제일 잘 알면서 옆에 있었으면서도 아무것도 못했어. 나 진짜 못된 언니야.”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어깨가 들썩였고 목이 조여 오는 듯했다. 어머니는 말없이 일어나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 등을 감쌌다.
“우리 아가. 얼마나 마음고생했니. 그런 걸 혼자 껴안고 살아왔구나.”


어머니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따뜻하고 단단했다.
“그게 네 잘못만은 아니야. 아직 어렸고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웠던 일이야. 해주도 너도 모두 피해자잖아. 해주와 너 모두 서로가 곁에 있었으니까 그나마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나는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계속 울었다. 그제야 어머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오래된 주소록을 꺼냈다.


호준이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한 뒤 혼자서 아이를 키웠다. 동네에서도 말이 많았던 사내였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던 남자. 계집질을 좋아했다는 그 남자. 그녀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기에 매일 두 개의 일을 하며 시간을 쪼개 살았다. 새벽부터 마트에 출근하여 짐을 옮기고 매대에 정리했다. 정오부터는 밀려들어오는 바코드를 찍었다. 하교하는 아이들이 사 먹는 아이스크림 바코드가 많이 들어올 무렵 퇴근했다. 저녁에는 동네 아이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학습지 선생님을 했다. 그녀는 아들의 학교 상담을 빼먹은 적이 없고 하나뿐인 아들이 하교한 후 혹시나 굶지 않을까 마트에서 퇴근 후에는 항상 저녁을 차려놓고 일을 나섰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도 아이는 점점 말을 잃어갔고 결국 사춘기 무렵부터는 서로 마주 보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호준이 어머니가 사는 작은 아파트를 찾았다. 낡은 현관문 앞에서 나는 심호흡을 했다. 벨을 누르자 문이 열리고 나와 해주는 마주 선 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희, 예전에 앞 집 살던—”


“알아요. 기억해요.”


호준이 어머니는 눈가에 주름이 깊어진 얼굴로 우리를 반겼다. 오래 전보다 말라 있었지만 그 눈빛엔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기색이 있었다. 우리는 좁지만 정갈한 거실에 나란히 앉았다. 침묵을 깬 것은 나의 목소리였다.


“저희가 여기 온 건 오래전 일 때문이에요. 해주가 호준이에게 안 좋은 일을 겪었어요. 저는 그걸 알고도 말하지 못했고요. 해주는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저는 잊었지만 해주는 지워지지가 않나봐요. 그래서 언니 된 도리로 호준이에게 사과를 받으러 왔어요. 호준이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어서 어머니께는 실례지만 이렇게 찾아왔어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준이 어머니의 표정이 무너졌다. 난 무너진 표정을 뒤로하고, 우리가 어릴 적 겪었던 이야기를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나 정말 몰랐어요. 정말로. 애가 아빠 없이 자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내가 좀 더 정신 차리고 교육을 더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그녀는 이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정말 미안해요. 해주야, 너한텐 말도 안 되는 고통이었을 텐데 어른으로서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그리고 해성이 너도, 네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언니된 죄책감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녀는 나를 향해서도 고개를 숙였다.
“너희가 그 기억을 안고 어른이 된 거였구나. 그걸 알았어야 했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해주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전 내가 봉인해둔 감정이 떠올랐다.

나 역시 그날 이후로 어딘가 달라졌다. 부드럽고 약하다는 말을 듣는 게 두려워졌고 그래서 더 날카롭고 똑 부러지게 말하려 애썼다. 누가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마음을 꽉 묶어두고 살아왔다.
'나도 피해자였구나. 나도, 그날 이후 어딘가 부서졌던 거였어.'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나의 어깨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뒤, 우리는 호준의 어머니가 알려주신 일터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일이 끝나는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처음엔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조용히 밖으로 나와 인사를 건넸다. 인근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너 아직 그 날 일 기억하지?”

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 했다.

“미안해 해주야. 해성아. 그날의 기억은... 평생 내 안에 있어. 앞으로도 그럴거야. 평생 미안함 마음 잊지 않고 살게. 정말 미안해...”

그는 입술을 깨물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내가 했던 일이 어떤 건지 오래전부터 알았어. 하지만 사과할 용기도 너희 앞에 설 자격도 없었어.”

그는 해주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거 알아.”

해주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호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그날 일을 아직까지 생각해. 그 기억에 너무 괴로워. 근데 너도 그랬고 미안하다고 이렇게 말해주니까 그 기억이 조금은 물러날거라는 생각이 드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난 상처는 사라질 수 없다. 하지만 새 살이 밖으로 드러났다.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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