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동 육교 위에서

우리가 남을 바라보는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니까요.

by 양연화

남산타워가 정면으로 보이는 육교는 주말이면 일몰 명소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주중에는 마치 세상의 바깥에 홀로 놓인 것처럼 한가롭다. 나는 그곳에 서서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먼지 냄새를 맡으며 현실의 잡념과 글감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육교에 오르기 전부터 그는 거기 서 있었다. 유광 가죽재킷을 걸치고 단발머리에 느슨한 파마를 한 모습은 얼핏 보아도 규격 밖의 사람이었다. 그는 삼각대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그 옆에 홀로 서서 남산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스쳐보던 그의 캔버스에는 눈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남산이 깃들어 있었다.


그가 그린 남산타워는 매끈하고 반짝이는 것이 아니었다. 붉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듯 거칠고 다소 불안정한 모습이었다. 주변 풍경도 반듯한 아파트 단지나 번쩍이는 도심이 아니라 낡은 판잣집과 삐걱대는 골목들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 그는 그곳을 싫어했다. 미용실 앞에서 핑핑 돌아가는 알록달록한 장식물, 빨랫줄에 걸린 수건과 행주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는 툭툭거리는 버스. 시장 골목에는 찢어진 바구니와 시든 채소가 널려 있었고 그 특유의 오래된 시장냄새가 싫었다.

그는 저지대의 작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가 싫어하는 것들은 모두 고지대 주택촌에 있었다. 그는 가끔 그곳을 오르내릴 때마다 거기에 사는 이들과 자신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을 느꼈다. 버스를 기다리다 그것을 못 참고 땅에 쭈그려 앉은 아주머니, 대낮부터 술에 취해 평상에 드러누운 늘어난 흰색 난닝구를 입은 아저씨, 어디 목욕탕에서 훔쳐온 슬리퍼를 맨발에 끌며 걷는 할머니, 여유가 없는지 어디서든 어깨를 밀치며 새치기를 일삼는 할아버지, 힐끗 거리는 흰머리를 거칠게 긁는 아주머니. 어린 그가 보기엔 그들은 마치 다른 세계 사람들 같았다. 소란스럽고 투박하고 그래서 어쩐지 두려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기억은 무르게 변했다. 그는 이제 반짝이는 서울보다 그 투박한 세상을 더 선명히 떠올렸다. 그래서 오늘도 붉은 벽돌로 쌓은 남산타워를 그리고 있었다.

"이상하죠"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남들은 서울의 빛을 그리는데 전 자꾸 이런 걸 그리고 있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오히려 진짜죠. 우리가 기억하는 건 늘 반짝이는 것들만은 아니니까요. 명이 있으면 암이 존재해야만 하는 법이죠"


그는 잠시 웃었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어릴 땐 저런 게 정말 싫었어요.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모두 더럽고 지저분해 보였거든요. 근데 이제는 알아요. 다들 생계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는 걸요. 얼마 전 제가 살던 옛 동네에 가서 새삼 다시 느꼈죠. 그곳에서 수 백 개의 부부들의 사랑과 수 천 개의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들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의 나는 여유가 없었나 봐요. 그래서 쉽게 판단하고 쉽게 미워했어요"


"우리가 남을 바라보는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니까요. 내가 여유롭지 않으면 다 암흑으로 보이죠. 내가 여유로울 때면 세상이 분홍빛으로 보이고요. 지금은 훌륭하게 잘 자라셨네요"

그는 내 말을 곱씹듯 입술을 다물고 있었다.


"맞아요. 그때 나는 나를 보는 것도 힘들었던 거 같아요"


육교 위를 스치는 바람이 저녁 햇살을 데리고 지나갔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오래도록 남산을 바라보았다. 불완전하고 따스한 붉은 벽돌 같은 풍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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