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은 그냥 안다고 믿거든. 무뎌지는 게 편하니까"
다섯 번의 봄을 맞이하고도 또 몇 해가 흘렀다.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계절에 그는 출소했다.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을 다시 볼 면목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가 세상을 떴다. 그래도 가족이라고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던 남편과 그녀보다도 사랑했던 그 아들이다.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은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는 이를 때린다는 사실이 아팠고 남편이 죽고는 사랑하는 이가 사랑하는 이를 죽였다는 사실 때문에 살 수 없었다. 그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었다. 어려서 총명한 눈빛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누군가와 얘기할 때 장난스러운 말투를 건넬 이가 없었다. 그가 가진 특유의 미소를 지어줄 이가 없었다.
그는 내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20대의 나날들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그 일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으로 얻는 이득이 더 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큰 칼이 그 배에 푹 감겼을 때의 촉감은 잊히지 않았다. 알코올 가득한 피들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이 잊히지 않았다. 그저 살덩이에 불과한 그 꺼져가는 생명을 생각하며 그도 그저 살덩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후에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푹 찌르면 죽어버리는 허약하고 허약한 육체를 가진 생명체 따위가 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지 이상했다. 그의 괴로움은 죄책감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접하지 못한 야생의 경험으로 인해 나오는 괴로움과 같았다.
또 어느 때는 자신이 너무나도 불쌍하고 처량했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나와 같은 환경에서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이가 얼마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는 매일 밤 입을 틀어막은 채 울었다. 소리가 새어 나갈까 마음껏 울지도 못하였다. 그렇게 울다 보면 귀에서부터 시작하여 뒤통수까지 저려왔다. 눈물은 멈추려 해도 멈추지 않고 주룩주룩 흘렀다. 그는 우는 게 싫어서 슬픈 게 싫어서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그 순간 잡히지 않는 행복한 기억을 찾으려고 기억을 헤맸다. 그 기억 속에는 옛 친구들이 있었다. 초록 봄날의 정취도 있었다. 코 끝에서부터 무언가 찡하고 돌며 코 안 깊숙한 곳부터 꽉 막혔다. 눈물은 그의 코를 타고 귀를 타고 흘렀다. 코에서 흐르는 물은 눈이 포화되어 코에서 나오는 물이다. 점성이 없는 그냥 물. 이것은 눈물이다.
그는 어떤 밤에는 자살을 한 사람들과 그들 개개인의 사연을 생각해 보았다. 그도 삶을 끝내고 싶었지만 또 살고 싶었기에 먼저 겪은 선배들의 사연을 생각해 보며 죽음을 미뤄보았다. 그러다가 그저 그의 사연 자체를 생각해 본다. 세상은 누군가에게는 예쁘고 작은 성을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폭력의 성을 주었다. 그가 어렸을 때는 폭력이 전부라 믿었다. 평생토록 폭력 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고 모두 이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과 삶은 원래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머리가 크고 새로이 본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차라리 모든 것을 미워하면 좋으련만 또 생에 미련이 너무나 많았다. 사랑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그가 지금 살아있는 것들 중 증오하는 것은 오직 그 자신이다. 그는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행복한 순간들이 찾아오리라는 기대감은 있지만 그의 삶을 관통할 불행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한 때 부푼 꿈을 꾸던 소년이었다. 많은 여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안달하는 남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하지만 그는 살아내야 했다.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그는 다시 눈을 떴다. 남는 시간에는 항상 검정고시와 수능 준비를 했다. 준비를 하는 동안 모든 생각을 끊어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몰두할 일이 있었기에 전보다는 그 자신을 갉아먹지 않았다. 준비를 아주 오래도록 했기에 출소하고 본시험에서 단박에 원하는 학교와 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의 목표는 그저 행복한 삶이었다. 하지만 그 아버지와 어머니는 빚 만을 남긴 채 죽었다. 그의 수중에 있는 것은 오직 빚뿐이었다. 그는 학업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당장 지낼 곳이 없었고 당장 먹을 음식이 없었다. 인력사무소에 가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고 했다. 배를 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많이 번다기에 그 일을 했다. 그래도 감옥보다는 나은 세상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렇게 일 년 동안 돈을 모아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젊음을 잃었다. 더 이상 행복한 삶도 꿈꾸지 않았다. 이 삶에 행복이 든다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마 그 맘쯤 그를 만났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처럼 그와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시절 그는 교실에 앉아 있기엔 너무 생생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머리도 좋아서 뭐든 잘 해냈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유머가 일상인 사람이었다. 말끝마다 어떤 장면이나 미래를 그리는 듯한 기색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마치 무언가에 지친 채 겨우겨우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눈동자는 흐렸고 말수는 적었고 어깨는 늘어진 채 걸었다. 나를 보는 눈빛은 멍하니 익숙한 얼굴을 찾는 듯했다. 나는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지나간 일을 물어볼 수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오랜만에 만난 여느 동창처럼 그를 대하고 싶었다.
"요즘 뭐 하고 지내?"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그냥 일하고 공부하고 자고 또 일하고. 너는?"
"나도 비슷하지. 그냥 하루하루 지나가는 거 붙잡고 사는 중"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멀리 지나가는 차를 응시하며 말했다.
"넌 아직도 뭘 좋아하고 그런 게 있나 봐"
"네가 제일 그런 사람이었잖아. 하고 싶은 거 많고 세상 궁금한 거 투성이었던 사람"
그가 피식 웃었다. 사실 웃음이라기보다는 입꼬리가 잠깐 움직인 거에 가까웠다.
"그랬었지. 근데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나"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볍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한참을 조용히 걷더니 문득 물었다.
"너는 그때의 나를 좋아했어?"
나는 먼 곳에 잠시 눈을 두고 말을 이었다.
"그 시절의 너는 너 자신을 좋아했잖아. 그게 좋았던 것 같아"
그는 다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아주 작게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고 착각했던 거 같아. 근데 지금은 모르겠어. 내가 뭐였는지 뭐가 되고 싶은지도"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는 의외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왜?"
"대부분은 그냥 안다고 믿거든. 무뎌지는 게 편하니까. 근데 넌 지금도 고민하잖아. 네가 무엇이며 뭘 원하는지"
"그런 거 이제 별 의미 없는 줄 알았는데. 너랑 얘기하니까 좀 생각나네. 예전에 내가 어떤 애였는지. 네 말대로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때"
"아직 늦지 않았어"
"뭐가?"
"네가 다시 뭔가를 하고 싶어지는 거. 그거 늦은 게 아니야. 우리 아직은 살 날이 더 많잖아?"
그는 아주 조용히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고마워. 너랑 얘기하니까 좀 숨 쉬는 기분이야"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그에게 조금이나마 이 시간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얼마 후에 결혼했다. 결혼식 날 그도 왔다. 멀리서 내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복과 슬픔이 섞인 얼굴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식이 끝난 뒤 잠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그는 예전보다 조금 더 단정해진 옷차림에 말투도 한결 여유로웠다. 뭔가를 이겨낸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잘 지내고 있어?"
"응. 전보단"
짧은 대답 속에서 여러 겹의 시간이 느껴졌다. 그가 천천히 다시 자신의 삶을 복구하고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 이 후로 아직까지 그를 본 적은 없다. 문득문득 생각이 나기도 한다. 멍하니 창밖을 볼 때면 가끔 그가 말없이 걸어가던 뒷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길 바란다.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더라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길. 어린 시절의 너에게는 분명 그런 잠재력이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