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를 지나며

“시대 때문에 신분에 묶여 있지만 높은 곳을 바라보는 기백이 멋지잖아”

by 양연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봄날. 흙향기가 온 공기를 감싸고 아스팔트에 튀긴 빗줄기가 다리에 붙지 않는 기분 좋은 습도의 날이었다. 투명한 우산을 들고 거리를 걷고 있는 내게 어떤 이가 말을 걸어왔다. 우산을 쓰고 있지 않은 그 남자. 내리는 비로 훤칠한 자신을 적시던 그 남자. 영혼 같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는 그 남자. 그런 표정으로 여럿 여성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그 남자. 그는 내 고등 동창이었다.


학창 시절 이야기를 꺼내려면 이제는 꽤 오래된 기억을 꺼내야 한다. 나는 그때에도 관찰하기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그 시절 어울리던 친구들은 책과 담을 쌓은 이들이었다. 문제를 피우는 학생들은 아니었지만 썩 모범적인 학생도 아니었다. 그중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체육관에 가고 음악실에 가고 화장실에 가고 매점에 가고 산책을 나가곤 했지만 도서관에 같이 가 줄 이는 누구도 없었다.


학교 도서관은 항상 고요한 곳이었다. 내가 입학할 당시에 준공이 끝났다는 신관은 통창으로 된 원형 모양의 건물이었다. 그 건물 2층과 3층에 도서관이 있었다. 다른 교실들과 달리 두 층을 튼 도서관에는 커다란 통 창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서면 창 밖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마치 커다란 액자 속에 걸려있는 그림 같았다. 그 당시 베르사유 궁전 내부를 사진으로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웅장함이 이곳 같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여름이 되면 녹음이 우거지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한들한들했다. 건물과 책상과 의자에서 나는 새것 냄새도 좋았다. 새 목재에서 나는 그 향기는 내가 졸업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새 목재 향과 대비되는 오래된 책들이 풍기는 냄새도 좋았다. 나는 6교시가 끝나고 종례를 하고 7교시 방과 후 사이 시간에 항상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사서 선생님을 제외하면 사람을 만난 적이 손에 꼽는다. 아직 학교가 익숙하지 않던 사 월의 어느 날, 사서 선생님과 막 이야기를 텄던 시기에 나는 처음 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스탕달의 적과 흑 1권을 빌리고 있었다.


나는 삼 월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그가 나와 같은 학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홉 개의 남자반이 있었고 일곱 개의 여자반이 있었다. 나와 같은 반 친구들 중 그를 좋아하는 이가 더러 있어서 이름과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남학생들이 농구하는 것을 스치듯 볼 때면 그를 응원하는 학생들이 항상 많았고 누군가 그에게 고백하였다는 소문이 삼 월 내에 몇 번이나 있었다.


나는 그가 책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서관에서 만난 것이 신기했다. 다음 날 적과 흑 2권을 읽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 당시의 나는 책에 관하여 이야기할 사람이 없었기에 그에게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안녕 나도 일 학년이야”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대답했다

“안녕 근데 나 일 학년인 거는 어떻게 알았어?”


“너 유명해. 누가 너한테 고백했고 누구는 너를 좋아하고 그런 소문이 많아. 적과 흑 재밌어? 어제 일 권 빌린 거 봤는데 오늘 그걸 읽고 있길래 궁금해서”


“응 번역이 어색해서 안 읽히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그래도 하루 만에 다 본거면 재밌나 봐”


“재밌다. 인기 많은 네가 꼭 쥘리앵 같은데 네가 그 책을 재밌게 보고 있네”


“너도 읽었어?”


“응 마지막 권 보기 전 까지는 내 이상형이 쥘리앵 같은 사람이었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의 능력으로 제 가치를 증명하는 모습, 시대 때문에 신분에 묶여 있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기백이 멋지잖아”


“마지막에 왜. 재밌게 보고 있는데 스포일러 하면 어떡해”


“미안”


그때 그는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상반되는 진실된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아니야 농담이야. 근데 나도 내가 쥘리앵과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재밌게 읽는 거야. 현시대는 눈에 보이는 신분은 없지만 보이지 않는 신분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쥘리앵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나아 가는 게 내가 먼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랑 비슷할 거 같아”


“너 꿈이 뭔데?”


“돈 많이 버는 사람”


“뭐야, 그게. 돈 벌어서 뭐 할 건데?”


“그건 몰라. 그래도 일단 돈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돈 때문에 치사하게 살고 싶지가 않아”


“그럼 뭘 해서 많이 벌건데?”


“그건 생각해 봐야지. 아직 몰라”


“지금 조금 멋있으려다 만 거 알아? 꿈이 돈이라니 정말 멋없다”


“너네 집 부자야?”


“아니”


“그럼 돈 많이 벌면 좋지. 네가 가식적인 거 아니야?”


“내가 쓸 만큼만 벌면 되지. 많으면 좋긴 하겠지만 많이 벌려고 할수록 마땅히 감내할 무엇인가 있을 거야. 결국에 중요한 건 가족을 비롯한 사람들 아니겠어? 돈보다 그들과의 관계가 더 소중한 거지”


“근데 그 가족들을 먹고 살리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쓸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거지”


“쓸 정도가 얼마 정도인데?”


“나도 모르지? 그냥 우리 엄마 아빠가 버는 정도로 미래의 나랑 내 남편이 벌면 좋을 것 같아”


그 당시 내가 그에게 어떤 실수를 한 건지는 한참이 지나서 알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우리는 자주 만나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를 알아갔다. 쥘리앵과 레날 부인이 했던 사랑과는 거리가 먼 우정과 가까운 종류의 관계였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나는 항상 같이 집에 가는 친구가 있었다. 그날 그 친구가 아파서 학교에 오지 못했다. 원래 열 시면 항상 학교를 나섰지만 그날따라 집중이 잘 되었던 터라 열한 시 반까지 자습을 했다. 자습을 마치고 학교에서 나오는 길에 그를 만났다.

“오 공부 열심히 하네, 이 시간까지 하고 말이야”


“원래 열 시에 가는데 같이 가는 친구가 없어서 오늘 처음 늦게까지 있었네. 너야 말로 의외로 열심히 한다”


그는 특유의 농담조 어투로 말했다.

“열심히 해야지 좋은 대학 가서 돈도 많이 벌고 잘 살죠. 그럼 혼자 가는 거야? 집이 어느 쪽인데?”


“강 건너서 바로야”


“완전 반대구나. 잘 가라”


“그래 나중에 보자”


“뭐야. 그냥 가도 돼? 이 시간에 가는 건 처음이라며 안 무섭겠어? 내가 데려다줄게”


“아니야 너희 집은 반대라며. 안 그래도 돼. 그리고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너무 늦을 거야.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지 않겠어?”


“아니야 우리 부모님은 나한테 크게 관심 없어. 그리고 우리 요즘에 시험기간이라고 얘기도 많이 못했으니까 가는 길에 얘기도 하고 좋잖아”


“고맙다”


그 밤의 공기를 아직 기억한다. 이 전에는 분홍 벚꽃비가 내리는 봄을 기다렸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녹음이 우거진 연둣빛 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 연두색 녹음의 향을 기다리게 되었다. 곧 여름이 되는 그 계절을 기다리게 되었다. 아마도 그건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날의 인상이 짙어서 인 듯싶다.


“계속 기억나는 순간이 있잖아, 난 너랑 처음 만난 날이 좀 그래. 나한테 돈이 꿈이 될 수 있냐고 한 게 좀 박혔나 봐. 나는 네가 부러워. 너는 왜곡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는 사람 같아. 나는 좀 꼬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나는 네가 부러운데, 인기도 많고 밤에 혼자 다녀도 안 무섭고 말이야”


그가 한참을 말이 없길래 내게 오늘 있었던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이어갔다. 쉼 없이 이야기를 하며 그의 표정을 봤는데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암울한 표정을 했다.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는 내가 돈이 없는 집에서 자랐기 때문이야. 우리 아빠라는 작자는 돈도 안 벌어 오면서 맨날 엄마와 나를 때려. 내가 그걸 볼 때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제발 신이 있어달라고, 거기 계셔달라고 빌어. 그래서 내 모든 아픔과 눈물에 부디 보답해 달라고 빌어. 누구보다 힘겹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 끝에 꼭 결실을 맺어달라고 빌어. 그러다가 또 나는 그저 이 우주에, 지구에, 이 땅에, 수만의 우연이 겹쳐져서 탄생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이런 내가 겪는 일들과 내가 하는 수많은 생각들도 그저 나만의 것들이며 내가 죽으면 모두 잊힐 거라고 생각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생각했어. 숨만 쉬고 살아가는 저 사람. 어떠한 돈벌이도 하지 않고 자식과 부인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살지도 않고 오히려 그걸 앗아가는 저 사람. 그저 지구의 아까운 자원을 축내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사람이 이런 나쁜 생각을 하다 보면 이런 내가 너무 싫어진다? 근데 또 그만큼 그 인간도 싫으니까 오래 자책하진 않아. 난 그 쓰레기 인간의 피가 내 몸에 흐른다고 생각하면 그게 너무 아리게 싫어. 난 내 기억이 닿는 순간부터 이 생각을 하며 살았어.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서 이 인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큰가봐”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힘들었겠다는 얄팍한 위로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 당시의 나는 그가 한 얘기를 소설처럼 이해했지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날부터 그를 볼 수 없었다. 소문으로 들은 건데 그는 살인죄로 소년원에 갔다고 한다. 그 아버지를 마침내 죽이고 소년원에 갔다고 한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