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삶은 돌아갈 수 없는 고백의 형태였다”
그녀는 목이 훤히 보이는 짧은 단발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으면 성별을 헷갈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항상 입고 다니는 하늘하늘한 원피스 덕에 그녀를 처음 본 사람 중에 성별을 고민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항상 하늘을 보았다. 바람이 불 때에도 날이 좋지 않은 날도 햇볕이 쨍쨍한 날에도 항상 시간이 되면 하늘을 보았다. 그녀를 하루 종일 관찰하던 영준은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두 시간은 될 것이라 했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원했지만 그 조차도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하였다. 그저 현재의 본인이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과 결국에 자기가 원하는 무언가를 할 거라는 두리뭉실한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조차도 과연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 이대로 산다고 해도 결핍하지 않았다. 그저 본인이 기준이 높은 탓이었지 그녀는 누가 봐도 불행한 삶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는 그 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 이렇게 행복감을 느끼는 자신이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행복을 잃고 과거에 행복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며 과연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헤어지던 그날까지 그녀는 그의 사랑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의 눈빛과 행동 그리고 모든 말에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원했고 그 무언가는 현재에 있지 않았기에 지금 가진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헤어졌다.
“나는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잃을 것이 많더라”
“그렇지. 우리 하나는 이렇게 예쁜 얼굴도 가지고 있고, 그림도 잘 그리고, 친구도 많고, 하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분들도 계시고 그리고 어제 산 맥북도 있고 가진 것이 많지”
“돈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가진 것이 많은 것 같아. 근데 또 그들이 주는 안정감 때문에 내가 더 발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괴로워. 사람이 어떤 한계에 부딪혀야지 발전이 있는 법인데 나는 너무 안전하고 안락한 둥지가 있는 것 같아”
“둥지가 없는 이들은 선택을 못하지만, 둥지가 있는 사람은 선택할 수 있으니 있는 편이 당연히 좋은 게 아니겠어? 꼭 한계에 부딪혀야 발전이 있는 것은 아니야. 하나는 스스로에게 도전과제를 매일 주고 있잖아. 일만 해도 그래. 프로젝트 사이와 사이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그냥 보낸 적을 본 적이 없어. 이번에 디자인 교육 영상 제작하는 것도 시작했고 지난달부터 또 연재 준비도 시작한다고 했잖아. 나는 하나가 한 개의 일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이렇게 매번 스스로에게 과제를 주는 것이 한계로 모는 것 아니겠어? 근데 하나는 정서적으로는 돌아올 곳이 있으니까 더 좋은 거지”
“근데 내가 하는 일은 다 창작에 관한 일이잖아. 굴지의 작가들을 봐. 모두 극한의 상황에 몰렸어. 죄와 벌을 쓴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 유형수 생활을 하며 글을 썼어. 프란츠 카프카는 낮에는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 글을 썼는데 평생직장과 가족의 기대 사이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대. 내 주변인을 봐도 별 일이 많아. 누구의 아버지는 집에 불을 지르고 그 안에서 자살했대. 누구의 어머니는 목사님과 바람피우고 집을 나갔대. 그 친구들은 평생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겠지. 근데 나는 뭐지? 내 고민은 모두 내 속 안에 있는 나와의 싸움이야. 나는 그게 너무 괴롭고 부끄럽고 창작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나는 오히려 그런 하나가 정말 창작자라는 증거 같아”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극한의 환경에 몰린 사람들이 예술을 만든다고 믿지 않아. 그런 사람들은 생존하느라 예술할 힘조차 없을 수도 있어. 진짜 예술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나는 지금도 충분히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고 있잖아. 그 싸움이 외부 환경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나는 계속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내가 잃을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이야”
“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 나랑 같이 가자”
“오빠는 내가 잃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거야”
“잃지 마. 하나야 잃지 마.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내가 계속 옆에서 응원할게.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붙이는 바보 같은 이가 어딨어. 우리 하나는 똑똑한 사람인데 왜 그런 선택을 하겠어.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완벽하게 이해해. 네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겠어.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은 굴지의 작가가 아니라 완벽한 행복을 찾는 사람 아니야? 그 행복은 지금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내 옆에서, 가족 분들 옆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며 찾을 수 있는 거잖아”
그녀는 그의 말을 흘려버리는 척했지만 사실 그 말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 그의 말에서 틀린 구절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은 모두 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이 일도 예외는 없었다. 그다음 달에 그녀는 모두를 떠났다. 그녀가 어디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전화번호도 이메일도 블로그도 인스타그램도 모든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다. 핸드폰 안에서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를 흘려보낼 수 없었다. 그녀의 모든 친구들에게 그녀의 행방을 물어봤다. 그녀의 여동생에게도 물어봤다. 그들 중 누구도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도시로 갔다. 간판도 거리 이름도 버스 노선도 모두 낯선 곳이었다.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처음엔 기대했었다. 여기서 모든 것을 깨닫고 모두에게로 돌아가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먼저 사랑이 정말로 나에게 맞는 옷인지 생각했다.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이 나를 더 깊이 있게 하는 일인지 혹은 더 깊은 외로움으로 이끄는 감옥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또 자유란 무엇인지 생각했다. 혼자 있고 혼자 선택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 속에 그녀가 그렇게 말하던 '자유'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저 타인의 간섭이 없는 상태가 자유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 상태가 자유인지 혹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 삶을 내가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 자유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생각했다. 그를 떠나온 내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그와 함께 있었을 때 내가 더 진짜였던 건가 생각했다. 그녀는 이 도시에 와서 사랑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고 사랑 없이 살아도 '결핍'이라는 단어가 생기지 않길 바랐다.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이 그녀가 도달하고자 했던 독립적인 자아의 완성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랑받지 않고도 기억되지 않고도 이름 불리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한 인생은 고요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묻지 않고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 고요함이 처음에는 안도였다. 그러다가 곧 고통이 되었고 이제는 그냥 습관이 되었다. 그녀는 이곳의 작고 오래된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이름 없는 회사들의 브로셔나 소책자 표지를 만드는 일을 하였다. 밤에는 혼자 창문 앞 나무 책상에 앉아서 창밖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색했다. 이곳에서 새로이 친구를 사귄다면 버리고 온 모든 것들이 헛되이 되는 것 같아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젊은 날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사색하되 꿈 많던 그 눈빛은 이제 그녀의 얼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똑같은 눈과 똑같은 입매였지만 그때의 표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이제 희망을 말하던 사람이 아니라 희망이 무엇이었는지를 더듬어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저 사무치게 그리워했다고 한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매일같이 그랬다. 그가 웃으며 건네던 말투. 그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던 어조가 이따금 라디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찢어진 필름처럼 다시 들려왔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던 방식은 가끔 누군가가 비슷한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그녀는 그의 말 없이도 사랑이 전해지는 눈빛을 떠올리며 눈을 감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그를 그리워하다 보면 문득 자신이 그를 바라보던 그 젊은 날의 눈빛이 더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누군가를 그렇게 깊이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향해 눈을 들고 주저함 없이 마음을 드러낼 수 있던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던 시절의 자신이었다. 그 그리움은 점점 그 시절의 자신에게로 기울어갔다. 사랑받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던 얼굴과 세상에 아직 실망하지 않았던 눈동자와 거짓 없이 웃을 수 있던 그 표정이 이젠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아프게 했다.
“이곳으로 와 처음 3년 동안은 버티는 데 집중했어요. 그다음 5년은 그리움을 무시하는 데 익숙해졌고 그다음 7년은 그리움을 견디는 기술을 익혔어요. 하지만 모든 시간 동안 매일같이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떠났지만 사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이렇게 허무한 자리에 앉아 있으면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느껴요. 도대체 저는 뭘 위해서 떠나온 거며 무엇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떠나오기 전에 그가 말했었죠. 정답은 모두 여기에 있는데 어디에 가냐고 얘기했어요. 사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 제가 돌아간다면 아무도 더 이상 기다리고 있지 않겠죠. 저는 지나간 봄날의 추억이겠죠”
그녀는 이 도시에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어떤 계절을 가슴속에서 매일같이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돌아갈 수 없는 고백의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