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에서

"조금 아플지도 몰라요"

by 양연화


어려서 옆 집에 살던 호성이라는 동갑내기가 있었다. 그 애는 깡 마른 팔과 다리를 가졌다. 항상 장난기 많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애는 우리 집에서 자주 놀고는 했다. 보통 나의 여동생과 나와 그 애 셋이었다. 베란다에 있는 알록달록한 매트 위에는 각종 장난감이 있었다. 여자 아이만 둘 있는 집답게 바비 인형들과 그들의 집, 동물 인형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외에도 주방 놀이 장난감, 병원 놀이 장난감, 알파벳 놀이 장난감 등이 있었다. 그 베란다는 아지트 같았다. 이불을 끌고 와 동굴을 만들어서 숨어있기도 했고 그곳에 들어오려는 어른들을 악당이라고 부르며 마법봉으로 처치하려고 시늉하기도 했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가정주부였다. 매일 다른 반찬으로 아침을 차려 주셨고 방학 때면 삼시 세끼와 간식들 까지 챙겨 주셨다. 주말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놀이공원, 박물관, 수족관, 미술관, 수영장 등에 놀러 갔다. 나는 어렸을 때 학년마다 발레, 피아노, 웅변, 연기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내가 원해서 배운 것들이었다. 어머니는 강요하지 않았다. 후에 중학교에 올라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도 공부하라는 말씀을 단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학부모는 아니었지만 정말 좋은 어머니였다. 어느 날 우리가 아기는 어떻게 생기는지 물어봤을 때 어머니는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면 아이가 생긴단다. 우리 해성이랑 해주도 나중에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아이를 가지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듣게 되었지만 이 날 내가 "엄마가 할머니를 자주 보지 못하는 듯 나도 엄마를 자주 보지 못하게 되는 거야?"라고 물으며 평생 같이 살자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고 했다.


내가 여덟 살, 나의 동생은 여섯 살. 여름방학이 갓 시작하여 매미가 징그럽게 울어대던 시기였다. 창고에서 선풍기를 꺼내어 밤새 틀어 놓아도 시원하지 않았다. 티브이에서는 방학 맞이 교육 프로그램이 편성되었는데 하나는 과학 프로그램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 프로그램이었다. 서점에서 사 온 책과 함께 매일 시간 맞춰서 13번 채널을 틀었다.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는 깨닫지 못했지만 그 집중이 깨지면 다시 더위가 느껴졌다. 이 더위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샤워를 하고 나와 선풍기를 강풍으로 쐬며 어머니가 잘라 주신 수박을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녁에 수박을 찾을 때면 어머니는 많이 먹으면 자다가 이불에 오줌 싸니 조금만 먹으라고 하셨다. 나와 내 동생은 어머니가 보고 있지 않을 때마다 수박을 냉장고에서 계속 꺼내 와서 먹었고 그 사실은 우리가 뱉은 수북한 씨로 들켰다. 어머니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다. 그렇게 수박을 많이 먹은 날이면 해주는 항상 오줌을 쌌다.




그 해 여름방학이 시작한 주였다. 어머니가 시장에 장을 보러 가서 교회 집사님과 우연히 만났다. 집에 있는 내게 차 한 잔 마시고 올 테니 동생을 잘 돌보고 있으라고 전화하셨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옆 집 호성이가 문을 두드렸다. 동생과 나는 병원놀이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의사, 해주는 환자, 호성이는 간호사였다. 동생과 나랑 할 때면 주사를 놓을 때도, 청진을 할 때도 모두 옷 위에 대고 하곤 했었다.

"환자분 감기 기운이 좀 있고 공주병에도 걸리신 거 같은데요,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약 잘 드시고 주사도 맞고 가세요"


해주가 까르르 웃으며

"네 선생님. 선생님도 공주병 걸리신 거 같은데 주사 맞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또 까르르 웃으며

"저는 의사라서 안 맞아도 됩니다. 간호사선생님, 이 환자분께 주사 놔주세요"


호성이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고는 옆에 제일 큰 주사를 들고 위로 쏘는 시늉을 했다.

"조금 아플지도 몰라요"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셋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이때 호성이가 갑자기 엎드려 있는 동생의 속옷을 내려 주사를 놨다. 나는 처음 보는 상황이라 선악을 판단할 수 없었다. 해주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린 해주의 하얗고 토실토실한 엉덩이에 호성이가 주사를 놓는 시늉을 했다. 그러더니 너 엉덩이 정말 귀엽다 하고는 양손으로 조물거렸다. 그때서야 내가 저지를 했고 호성이는 그만뒀다.


그 이후에 역할을 바꿔서 계속 놀이를 하였다. 호성이가 환자, 나는 간호사, 해주는 의사. 나는 해주의 불편한 기색을 알아챘다. 그래서 똑같이 갚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똑같이 그 애의 바지를 내리고 몇 번 내리치고는 주사를 찔렀다. 그리고 너 엉덩이는 참 못생겼다고, 똥 싸고 제대로 닦긴 했냐며 말을 덧붙였다. 호성이는 씩씩 거리며 바지도 추키지 않은 채로 일어나더니 이거나 보라며 자신의 성기를 보여줬다. 여덟 살의 나와 여섯 살의 내 동생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우리는 아기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도 몰랐다. 남성한테 그런 것이 달려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처음 보았다.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호성이는 바로 제 집으로 돌아갔다. 동생과 둘이 남아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놀이하던 장난감들을 정리했다.


어머니가 오셨을 때 우리 중 누구도 먼저 그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 며칠 뒤에도 그 일을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해주에게 다시 말을 꺼내지 않은 이유는 어린 해주가 그냥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다시 상기시켜 주는 꼴일까 봐서다.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한 이유는 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냐고 꾸중할 것 같아서다. 나는 그 애가 너무 싫어서 혼나기를 바랐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시간이 흘러서 나와 해주 모두 서른을 바라보게 되었다. 명절이 되면 친척들은 이제 결혼 얘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나는 만나는 이와 결혼을 준비하는 중이라 그 몫은 모두 해주의 것이었다. 해주는 이십칠 년 동안 남자친구를 만난 적이 없어서 더 재촉하시는 듯했다. 해주는 여럿의 소개팅을 해봤지만 그중 만나고 싶은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해주는 나와 정반대의 성향으로 자랐다. 나는 식욕이 왕성하여 항상 다이어트를 말하는 어른이지만, 해주는 주변에서 먹으라고 난리 치는 알아주는 소식인이다. 나는 제약회사에서 영업일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해주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마음만 먹으면 평생 사람을 대면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불의를 보면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고, 해주는 그냥 안고 가는 사람이다.


나는 호준이 일을 이때만 해도 거의 잊고 있었다. 어느 날 퇴근 후에 해주와 집에서 맥주 한 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 애는 그날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며 펑펑 울었고 해주는 이게 왜 언니 탓이냐며 위로했다.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은 해주인데 난 또 미안할 짓을 했다. 그날 이후로, 밤에 자다 깬 해주는 거실에 불을 켜두고 소파에 앉아 있기도 했고 한밤중에 방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나는 애써 모른 척했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내 안에서 도로 밀려오면서도 다시 말을 꺼내기 두려웠다. 말문을 열면 뭔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해주가 그날의 일을 그렇게 오래도록 품고 있었단 사실과 그걸 알아채지 못한 내가 수치스러웠다.


주말 아침 눈을 떴을 때 해주가 내 침대 앞에 앉아 있었다.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낯익었다.

"언니 나 그때 이후로 남자가 손만 스쳐도 소름이 돋아."


그 말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몸으로 그대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다는 말은 거짓이고 그 애는 벌도 받지 않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릴 때는 그냥 다들 넘어가고 잊는 줄 알았어. 그게 보통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나 이상한 사람 되는 것 같아."


"아니야. 절대 아니야."


"다들 아무 일 없이 연애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고 사는 거 보면 부러워. 나만 이렇게 된 거 같아서 그때 일이 자꾸 다시 생각나."


그 말이 나를 찔렀다. 나 역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사랑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나온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해주는 그때 거기서 멈춰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 안에 쌓였던 무언가가 터져 나오듯 해주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그 애 다시 만나자. 우리가 마주하자. 지금이라도. 너는 언니가 있으니까 걱정 마."


나는 이렇게 호언장담 했지만 해주의 오래된 불쾌한 기억을 잊게 할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온 마음을 다하여 해주가 그 기억에서 탈피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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